공포영화를 즐기십니까? 저기 아니라고 고개 저으시는 분이 계신가 하면, 군침을 삼키며 눈을 반짝이시는 분도 계시는군요. 저요? 후자쪽이죠. 그래서인지 별 생각 없이 전주에 와서 처음 골라든 영화가 호러로군요. 얼마나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어대는지, 이 정도로 피를 퍼붓느라 특수분장 담당이 꽤나 고생했겠다 싶어요.
진저(캐서린 이사벨)와 브리짓(에일리 퍼킨스)은 각각 16살과 15살의 왕따자매입니다. 영화는 첫 오프닝에 갈가리 찢겨 죽은 개가 나와서 그렇지 보통 틴에이저 무비의 공식을 따라가요. 머리 빗고 예쁘기만 한 공주 트리나는 상대적으로 덜 예쁘고 인기 없는 이 아이들을 대놓고 바보취급하지요.
하긴, 이 자매는 왕따 당할 기질이 농후합니다. 어른이 되느니 열여섯 이전에 죽는 게 낫다고 항상 되뇌이고 어떻게 죽을까, 어쩌면 더 끔찍한 모습으로 죽을까를 궁리합니다.
쇠스랑에 찍혀서, 목을 매달아서, 차 바퀴에 완전히 깔려서, 울타리 나무말뚝에 찔려서... 이 아이들이 슬라이드로 찍어 내놓은 사진들을 보자면 엽기도 이만한 엽기가 없다 싶을 정도죠. <아담스 패밀리>의 웬즈데이가 자매로 태어나서 사춘기가 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니 왕따 당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니죠.
하지만 이건 전초전에 불과하군요. 트리나를 골탕먹이기 위해 공원에 들른 이 자매 앞에 동네 개들을 갈가리 찢어죽이던 괴물이 나타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진저를 채간 괴물을 쫒아간 브리짓은 겨우 괴물에게서 언니를 떼어놓고, 자매를 쫒아오던 괴물은 또래의 마약 딜러인 샘의 차에 치여 죽고 맙니다.
겨우겨우 집에 도착한 브리짓은 괴물에게 온통 찢긴 진저의 상처를 살피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처는 이내 아물어버리죠. 그리고 며칠 뒤, 그 상처자국에서 뻣뻣한 털이 자라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영화에는 상당히 재미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성장의 공포를 괴물이 되는 것에 빗대어 놓았어요.
괴물을 만나기 전, 초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난 직후에 늑대인간이 되어버리는 진저는 어른이 되느니 죽어버리겠다고 하지요. 어른이 되는 것은 괴물이 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거든요.
하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고 둔합니다. 선생들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그들을 좌지우지하지요. 실수로 트리나를 죽이고 난 다음, 부모님의 눈을 속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죠. 어머니란 사람은 피가 낭자한 부엌바닥에 누워 사진을 찍는 아이들을 보고 "집 안에서는 찍지 말라고 그랬지!"하는 게 전부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신체의 변화는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생리적인 변화가 남자아이의 그것보다 훨씬 극적이고 공포스럽게 다가오죠. 초경 말입니다.
이 아이들이 초경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탐폰 밖으로 새어나온 생리혈이 타일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아이들의 얼굴은 이전까지 온갖 엽기적인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얼굴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하며 찾아간 산부인과의 여의사는 "양은 많지만 정상적이란다. 이제부터 28일 주기로 하게 되지. 최소한 30년 간은"하며 웃는 얼굴로 '저주'하지요.
시간이 갈수록 진저는 브리짓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치렁치렁 겹겹이 겹쳐 입은 옷을 벗어버리고 몸매를 드러내는 섹시한 옷차림으로 학교 남학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지요. 그것이 먹잇감을 노리는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남학생은 진저에게 물리고 그 스스로도 괴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 악몽 속에서 진저를 고치기 위한 브리짓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해독약을 구하기는 했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려주질 않습니다.
다른 공포영화들은 대충 끝부분에 가서는 희망을 던져주지만 이 영화에선 아무래도 그렇게 낙관적일 만한 구석이 없군요. 그냥 모든 것은 핏구덩이 속에 던져져 있을 뿐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궁금해지는 것이 있군요. 이 아이들은 왜 '여자가 되는 것'에 대해 이토록 부정적인 것일까요? 단순히 10대 특유의 극단적 반항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개운하지가 않아요. 어른이 되는 것보다 여자가 되는 것,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큰 것 같군요.
또 궁금한 것 하나. 왜 서양애들은 '겁쟁이(chicken)'란 말만 들으면 왜 그렇게 물불을 못가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도 겁쟁이이긴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추신 : 화면 위쪽에 붐마이크가 들락날락하는군요. 상영 초반에 영사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면 사이즈도 이상해요. 양 옆이 잘린 3:5 화면이더군요.
덧붙이는 글 | 존 포셋 감독
캐나다, 2000년
에밀리 퍼킨스, 캐서린 이자벨
105분, 3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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