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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파스빈더 감독 특집전을 진행하고 있지요. 아직, 한번도 파스빈더를 본 적이 없다보니 이 기회에 제대로 된 영화를 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다른 유명한 작품들도 많은데(<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을 위시해서) 하필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릴리 마를렌'. 이 노래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전 프랑스의 가수 빠트리샤 까스가 부른 것을 들었더랬죠. 약간 나른하고 감미로운 노래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한나 쉬굴라가 부르는 것은 까스의 노래보다는 좀 딱딱하게 들리긴 하지만 그건 독어 특유의 발음습관 때문이겠죠.
2차 세계대전 직전. 스위스 취리히의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빌리는 무명 음악가 호버트 멘데르손과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그저 보통 음악가처럼 보이는 호버트의 아버지는 상당한 부자이고 독일에서 동포 유태인들을 탈출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빌리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죠. 아버지의 일을 돕는 호버트는 빌리가 독일인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빌리와 결혼할 마음을 굳힙니다. 호버트의 아버지는 스위스 정부에 손을 써 잠시 독일로 떠났던 빌리의 재입국을 막고 결국 빌리와 호버트는 각각 독일과 스위스로 갈라지게 됩니다.
독일의 바에서 노래하던 빌리는 예전부터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나치장교 한스 헨켈에게 찾아가 자신의 일자리를 부탁하고 결국 레코드 취입까지 하게 되지요. 빌리는 점점 유명해져서 '릴리 마를렌'이라는 예명으로 불리게 됩니다.
전쟁은 시작되고 빌리의 인기는 군인들 사이에서 대단하지요. 나치는 빌리를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사용합니다. 빌리는 나치군 앞에서 노래하게 됩니다.
반대로 호버트와 같은 노선을 걷는 레지스탕스도 빌리에게 접근합니다. 아우슈비츠의 존재를 증명할 필름을 운반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죠. 빌리를 만나러 베를린에 왔던 호버트가 나치에 체포되자 그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빌리는 그 임무를 해냅니다.
임무는 무사히 수행하지만 호버트와 만난 일, 레지스탕스와의 접선 등으로 빌리의 노래 '릴리 마를렌'은 금지곡이 되고 빌리는 자살을 기도하지요. 빌리가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돌자 나치는 그녀를 억지로 무대에 세워 노래하게 합니다. 그 직후, 전쟁은 독일군의 패배로 끝이 나죠.
취리히로 돌아온 빌리는 호버트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바라보면서 감회에 젖습니다. 하지만, 그 달콤한 감정에서 깨어날 새도 없이 그의 옆에 있는 다른 여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오는 빌리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나죠.
시대상황에 치여 뜻하지 않게 엉뚱한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또 실제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요. 빌리는 나치라는 정권에 동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그저 노래를 부를 뿐'이죠. 그녀가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화려한 명성이나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기만을 바랬죠.
그러나 그녀는 노래 때문에 나치의 선전스타 노릇을 하게 되었고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권의 전파자가 되어버립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봐야겠죠.
정치적으로 혼탁한 시기의 예술가들의 삶은 이런 것이겠지요. 자신의 예술이 그저 예술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 말입니다.
빌리는 단순히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지만 그 기회는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내리막길이었던 거죠.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내지만 그 사랑마저 그녀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녀는 이제 어디서 또 노래를 시작하게 될까요?
파스빈더의 영화는 항상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시스템에 치여서 망가지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만들던 그는 시스템에 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빌리의 모습과 감독의 모습이 겹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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