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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페셜에서 조느라 제대로 못 본 영화 중 프랑스 감독 르네 랄루의 애니메이션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오늘은 그 애니메이션만 따로 떼어 상영을 하더군요. <시간의 지배자> 말입니다.
유럽 애니메이션은 회화적이고 내용도 디즈니 것 같지 않게 상당히 철학적인 것이 많죠. 르네 랄루의 애니메이션도 그렇습니다.
페르디드 행성에 불시착한 끌로드는 먼 행성에 있는 친구 자파르에게 아들 피에르의 구조를 요청한 직후 숨을 거둡니다. 아이에겐 마이크를 주며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이르고서요. 뒤늦게 이 구조신호를 들은 자파르는 반역 혐의로 쫓기는 마통 왕자의 주장을 무시하고 피에르를 구하기 위해 페르디드 행성으로 향합니다.
행성에 가는 길에 도움을 구하고자 데블스볼에 들러 오랜 친구인 실바드 할아버지를 찾죠. 꼭 열대지방에 사는 산타처럼 생긴 이 사람 좋은 할아버지는 흔쾌히 도움을 주며 아이를 안심시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요정인 율라와 자드 또한 이 여행에 동참하죠.
디즈니나 저패니메이션에 익숙한 눈에 랄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거칠어 보입니다. 인물들도 매끈하게 생기지 않았고 울퉁불퉁하죠. 유일한 여자인 벨 공주(성미 고약한 마통 왕자와는 딴판인)는 천경자 씨가 그리는 여자들처럼 생겼구요.
하지만 피에르가 페르디드 행성에서 만나는 타조처럼 생긴 동물과 '왱왱'이란 동물은 상당히 귀엽고 유머러스합니다. 아, 요정 자드와 율라를 잊어서는 안되겠군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요 조그만 친구들은 사건을 저지르기도 하고 해결하기도 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법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답니다.
피에르를 익사시키려는 시도가 무산된 뒤 감금되었던 마통 왕자가 감마 10 행성으로 사라지자 자파르는 그를 잡으러 쫓아갑니다.
행성 감마 10 의 사람들은 '단일성'의 힘 때문에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죠. 다른 모습을 한 개체가 들어오면 그 단일성의 구덩이 안으로 들이밀어 자신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구요.
평화, 전체, 행복이란 단어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단일성을 이기는 방법은 광기와 증오밖에 없다고 율라와 자드가 일러줍니다. 이제까지 이기적인 모습만을 보여왔던 마통 왕자가 단일성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행성을 단일성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하지요.
다양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프랑스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피에르를 구하려고 페르디드에 거의 다가간 순간, 자파르 일행이 탄 우주선은 엄청난 흐름에 휩싸이게 됩니다. 곧 그들은 시간의 지배자 정찰대에 발견되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실바드는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죠.
시간의 지배자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식민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각각의 식민지의 시간대를 다르게 해놓았다는 것이죠. 페르디드 행성은 60년 전 과거의 시간 속에 있는 곳입니다. 율라와 자드의 힘을 빌어 실바드의 과거를 들여다본 자파르와 벨은 피에르가 실바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죠.
미래에서 태어나 과거를 살다가 이제는 영원한 시간 속으로 가버린 실바드의 장례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시간과 정체성, 다양성의 문제 등 이 영화는 생각보다 꽤나 복잡하고 질문거리를 많이 던져줍니다. 이렇게 시간이 겹치고 꼬여있을 때는 이야기를 보기 좋게 가다듬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이 작품은 적당히 생각할 여지를 남기며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생각만 있다는 웬만한 철학논문 한 편 정도는 써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전 피자도 좋아하고 달콤한 크림이 얹힌 케익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뼈와 살이 되는 것은 보기엔 투박하지만 영양가 풍부한 백반이죠.
아무리 3D 장난감이 뛰어다니고 피카츄가 전기광선을 쏘아대더라도 가끔씩은 이런 '영양가 많은'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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