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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은 내 생일이었다. 결혼한 후 처음 맞는 생일인지라, 시어머님께서는 일 마치는 대로 집으로 들르라 하셨다. 8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시어머님은 나에게 엄마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 그렇기만 할까. 결혼 전엔 별로 어려운 걸 몰랐는데 막상 결혼하고 나니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곤 했다.

생일 전날 신랑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왔다. 혹시나 하고 손에 든 것이 없나 확인해본 나는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가 들려 있길 기대했지만, 애석하게도 신랑 손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흔한 장미 한송이조차 말이다.

그리고 미역국거리조차 사오지 않은 남편에게 너무나 서운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신랑과 나는 장장 8년에 걸쳐 연애를 했으며, 결혼한지도 이제 6개월이 좀 넘었다. 원래 신랑은 매우 자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결혼하니까 챙겨주지 않는구나 싶은 생각에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기어코 난 미역국도 안끓여줄 거냐며 따졌고, 다툼속에 잠이 들었다.

물론 미역국 이야기를 하기 전에, 치사하긴 했지만 선물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나마 건지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생일날 아침, 시계소리가 여기저기 요란하게 울렸다. 잠결에 신랑을 먼저 깨우고 잠시 잠이 들었다. 얼핏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 것도 같았다. 신랑이 흔들어 깨워 일어나니, 밥을 먹으란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다. 눈비비며 건넌방으로 가보니 미역국에 하얀 쌀밥을 새로 해서 차려 놓은 것이었다.

우리 집은 슈퍼가 좀 멀리 있다. 신랑은 생일상을 차려 주려고, 전날 밤에 시계를 1시간 정도 일찍 맞춰놓고 나보다 먼저 일어나 슈퍼에 나가 즉석미역국을 사오고, 쌀을 씻어서 밥을 새로 한 것이었다.

밥상 앞에 앉으니 괜스레 눈물이 났다. 신랑은 몰랐겠지만, 난 그날 아침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국 한 그릇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아침의 그 감동은 온종일 나를 기쁘게 만들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시댁에 갔다. 시어머님은 포장마차를 하신다. 낮에는 붕어빵을 구우시고, 저녁엔 꼼장어에 소주를 파신다. 이미 그 동네엔 후덕하다고 소문이 나실 만큼 모난 데가 없으신 정말 좋으신 분이다. 난 시어머님께 가면 늘 어머님이 말아주시는 우동을 한 그릇 먹는다. 어찌나 맛있는지 둘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맛이다. 정말 어느 광고카피처럼 국물이 끝내준다.

그날은 우동을 먹지 않고, 갈비집에 갔다. 시어머님과 신랑과 함께 맘껏 갈비를 먹고, 밥도 먹고, 냉면도 먹고, 후식으로 수박까지 먹은 후에 식당을 나섰다. 나오는 길에 시어머님께서는 생일인데 화장품이라도 하나 사서 쓰라며 봉투를 건네주셨다.

집에 오는 길에 봉투를 열고 돈을 꺼내는데 뭐가 하나 뚝 떨어졌다. 뭔가 자세히 보니 짧게 쓰신 편지였다. 편지를 읽는 순간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엉엉 울고 말았다. 당신 생활도 힘드신데 그래도 며느리라고 맘 써주시는 어머님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는데, 어머님은 당신이 부족하다고 느끼셨나보다.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삐뚤삐뚤했지만 그 짧은 편지는 나에게 세상의 어떤 선물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아침의 감동이 밤에까지 이어져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어버이날에는 나도 어머님께 정성들여 편지를 한장 써서 드려야겠다.

언제나 제 뒤에서 딸처럼 저를 사랑해주시는 어머님,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저희가 충분히 효도할 때까지요.

덧붙이는 글 | 친구들은 저에게 복이 많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인복이 제일 많다고 부럽다고들 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가끔 엄마에게 처럼 어리광을 부리면 받아주시는 시어머님을 이젠 정말 엄마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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