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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도시 태생이라 아련하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향수라고 해봐야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무더기뿐이다. 그래도 기억 속 한 구석에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는 십수년 전의 풍경들. 넉넉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훈훈한 온기와 인정이 넘치던 시절. 우린 그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달려와버린 것은 아닌지.

몇 년 전부터 길거리에 등장한 추억의 풍경이 하나 있다. 노란 설탕을 국자에 넣고 은근한 연탄불로 녹인 뒤 소다를 약간 넣으면 이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밀가루가 깔린 평평한 판 위에 툭 쏟아놓고 둥그런 모양의 판으로 살포시 누른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납작하게 눌린 설탕 덩어리가 굳기 전에 별 또는 꽃, 물고기 모양의 틀을 위에 얹고 다시 한번 눌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갈색의 둥그런 설탕 덩어리가 굳기를 기다렸다가 살포시 들어올려 모양 틀이 찍힌 나머지 부분을 조심스럽게 뜯어먹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 모양대로 잘라내지 못하지만 혹 성공하는 날에는 공짜로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뽑기' 또는 '달고나'라고 불렸던 이 최고의 군것질 거리가 대대적인 복고 바람을 타고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가진 내 또래 이상의 어른들은 반가운 마음에 모여들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달콤한 설탕 녹는 냄새와 처음 보는 신기함에 눈을 반짝이며 모여든다.

불과 20 여년 전의 일이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나 남아 있던 이 뽑기의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이.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른 발전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고 잊어왔다. 때론 그것이 좋을 때도 있었다. 애써 돌이키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던 불합리와 불의의 시대. 하지만 그 시절의 모든 것을 그냥 이대로 묻어버리기엔 안타까움이 너무나 크다.

이 책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는 우리가 살아왔던 못 먹고 못 입었던 힘겨운 시절의 삶을 사진과 글로 고스란히 복원해내고 있다. 물론 몇 년 전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그때를 아십니까?'와 같이 생생한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그 시절의 평범했던 삽화와 용어를 그대로 살려서 또 다른 맛을 지녔다.

피카추와 디지몬 카드를 모으는 아이들에게 지나간 달력과 비료 포대로 만든 딱지를 쥐어준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다. 과연 이것이 땅바닥을 두들기며 서로 넘겨 먹기 위해 애를 썼던 당대 최고의 장난감이었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간혹 비축해둔 딱지를 모두 잃고 나면 부모님 몰래 멀쩡한 공책이나 교과서의 겉 표지를 뜯어 딱지를 만들어 의기양양하게 복수에 나섰다가 된통 혼나기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보온도시락과 급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숟가락 소리 달그락거리던 도시락이 겨울 교실 난로 위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덥혀지고 있던 풍경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또 TV에 등장하는 화려한 연예인에 열광하는 아이들에게 다방 한 구석에서 온갖 폼을 잡아가며 음악을 틀어주던 DJ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꼭 등장하던 '성도라사' 같은 동네 가게의 광고와 대한 뉴스, 애국가와 같은 풍경이 그 시절 그 느낌 그 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런 식의 복고풍을 두고 천박한 보수회귀주의자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데는 단순히 현재의 과도한 속도감에 대한 반감이나 불안감이 작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고 있는 모양새는 같겠지만 그 안을 지배하고 있는 거칠지만 끈끈한 관계들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는 잃어버린 시간이 되어 기억의 고물상에 모셔진 이야기들이 주는 잔잔한 여운은 메마른 현대인의 발길을 잠시나마 붙들어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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