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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한 패션잡지의 한국판에는 언젠가 이태원과 홍대, 압구정동, 그리고 청담동 등지의 분위기 좋은 바(Bar)와 카페(cafe)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를 쓴 에디터(패션잡지들은 꼭 '에디터'라고 하더라!)는 이런 장소일수록 외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말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에디터의 부연설명이었다. 그 에디터는 '뜨내기 외국인과 평범한 영어교사들도 많다'면서 잘(?) 사귈 것을 당부했는데, 뜨내기 외국인과 평범한 영어교사들은 친구로 사귀면 안되나?

하긴, 요즘의 패션지들은 고급 상품들과 럭셔리 즉 부(富)티나는 브랜드들의 광고를 잡지의 절반이 넘는 면에 할애하면서 앞다투어 고급유행을 선도하고 있으니, 그런 '고급정신'이 박혀 있는 사람들에겐 한국을 찾는 평범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들에게는 'Living Like A King'처럼 살고 있을지 모를 돈 많은 전문직 외국인들만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참 한심했다. '이 사람은 카스트 제도를 참 사랑하는구나. 외국인 친구는 인격으로 사귀는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 사귀어야 하는구나. 하여튼, 더 배우고 더 배부른 사람들이 차별을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기사를 쓴 사람은 유명한 잡지의 한국판 기자이니 세계 어딜 가더라도 잡지 이름에 버금가는 고급대접을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개인이 외국에 나가면 그 역시 뜨내기 여행객, 평범한 외국인에 지나지 않는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화이트칼라로 살던 사람들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면 대부분 블루칼라의 노동자가 되어버린다. 마찬가지다. 한국에 머무는 일부 3D 외국인 노동자들도 자국에서는 한때 잘 나가던 화이트칼라였던 경우가 많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무엇 때문에 무시하고 차별할 수 있단 말인가? 국가? 인종? 외모? 직업?

작가 박경주는 외국인으로서 독일에 거주하면서 독일의 이주노동자들을 담은 작품과 내국인으로서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로 이주노동이라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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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인
ⓒ 박경주
박경주는 독일에 거주하면서 외국인으로 느낀 차별에 대항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외국인이라면 비자문제로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베를린 출입국관리소에서 느낀 외국인으로서의 모욕과 분노를 '참석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가 바로 출입국관리소를 방문할 때라고 한다. 그는 출입국관리소에 오기 위해 옷차림에 신경쓰고, 직원의 질문에 준비하기 위해 독일어사전을 찾아가며 작문한 내용을 몇 번씩 암기했을 외국인 노동자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인종차별주의와 민족우월주의에 정면으로 맞서게 한다.

또한 박경주는 한국에 잠시 귀국하여 독일에서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 피해자로서만 인식해 왔던 자기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카메라 앞에 세운다. 박경주가 원하는 것은 '의식적인 포즈잡기'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데에 있다. 그들이 사진기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전시회 <워킹 홀리데이>에는 사진전과 함께 두 편의 비디오가 상영된다. 'The March'는 다양한 국적, 인종, 행진하는 군중의 모습과 데몬스트레이션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어디서 왔고 세계의 다른 편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Where are you come from'은 이주노동자에게 항상 따라 다니는 질문인 "당신은 어디서 오셨습니까?"를 그들 자신이 카메라를 향해 질문하는 방법으로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실험적이고 유희적으로 표현한다.

덧붙이는 글 | <워킹 홀리데이 전시안내>

- 전시기간 : 2001년 7월 4일(수) - 7월 15일 (일) 
- 장소 : 인사미술공간 3층 (tel: 760-4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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