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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틈만 나면 북한에 대해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은 믿을 사람이 못된다'(부시 대통령)든지, '북한은 망할 정권'(파월 국무장관)이라든지, '북한은 1-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테닛 CIA 국장)든지, '북한의 불량한 행동에 대해 보상을 해서는 안 된다'(라이스 안보보좌관)든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럼스펠드 국방장관)는 등 마치 북한에 대한 불신감을 놓고 경쟁이라도 하듯 거친 언사를 내뱉어왔다.

이는 '북한위협론'이 북한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힘보다는 '북한은 믿을 수 없는 미친 국가'라는 '낙인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위협론은 기술관료정치(technocrat)의 전형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평가 및 해석은 사실상 미국의 국방부 및 정보기관, 그리고 보수적 민간싱크에서 독점해왔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에 용이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한 평가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비롯한 군비증강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정략적인 의도 역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내 '북한위협론' 주창자들은 미국 내는 물론 한국과 일본의 정부, 언론, 학계 등 이른바 여론주도층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북한미사일위협을 MD 구상을 비롯한 외교안보전략의 '고정변수'로 만들어왔다. 정보독점과 전문성을 무기로 한 기술관료정치(technocracy)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미사일의 능력과 의도에 대한 평가는 대개 베일에 가려진 흐릿한 정보에 대한 일방적인 판단과 해석에 기초한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정보의 불확실성은 이에 대한 대응 자체를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으나, 가장 극단적인 평가에 기반을 둔 과도한 대응을 낳기도 한다.

또한 가끔은 '알 수 없는 상대방'에 기대어 자신의 사고 및 행동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이자 가장 폐쇄적이라고 하는 북한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미국의 'MD' 게임 역시 이러한 복합적인 반응과 의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동시에 국내외 냉전세력이 대북 불신 및 북한위협론을 끊임없이 길어올릴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고 있기도 하다. '정보의 불확실성' 그 자체가 이용하는 세력에 따라 한반도 평화에 가장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는 미국과 일본을 위협하여 이들 국가의 군사력 확대에 대응하고 체제 생존을 위한 협상용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또한 북한의 체제 생존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따라서 '협상을 중심으로 한 대응책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군사적인 대응책 역시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북한의 탄도 미사일을 둘러싼 논란은 상당 부분 북한에 대한 선입견이나 자기 행동 합리화의 경향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인 명제 - 북한에게 미사일 개발은 체제 생존의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 - 를 잊기 쉽다. 이것은 북한이 외부로부터 체제 안전보장과 포기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받을 경우 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자 하는 긴급하고도 근본적인 이유는 탄도 미사일이 안보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1999년 9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이유에 대해 "주된 목적은 안보, 즉 억지력(deterrence) 확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북한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우리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셀리그 해리슨은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원하는 이유는 "군사적으로 억지력을 확보하고, 외교적으로는 미국과의 안보, 경제 문제를 놓고 협상할 때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둘러싼 안팎의 논란은 이러한 가장 상식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북한은 깡패국가'라는 '낙인론'하에 이루어지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사뮤엘 샌디 버거는 재임 당시 "북한과 이란의 점증하는 위협이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라며 "이들 국가는 소련을 상대할 때 통용됐던 '억지력'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버거는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 2001년 2월 13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우리는 왜 스탈린이나 그의 후계자들에게 먹혀들었던 핵억지력이 김정일과 후세인과 같은 악한들에게는 소용없다고 믿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MD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외교안보팀의 '빅3' 가운데 하나인 안보보좌관 재직 당시 북한을 바라볼 때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랜드연구소의 조나단 폴랙은 "이러한 검증되지 않은 가정은 비정상적인 것"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국가들에게 적용되어온 핵억지력이 북한과 이란과 같은 국가들에게는 소용없다는 인식에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러시아 의회 국제관계 위원회 의장인 드미트리 로고진 역시 미국은 북한위협론을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포는 파리를 잡는 데 가장 좋은 무기가 아니다"며 북한위협론을 빌미로 MD를 강행하려는 미국을 날카롭게 풍자한 바 있다.

미국을 협박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남침을 감행한다?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해 가장 그럴 듯하지만 극단적인 해석은 북한이 미국 본토나 주일미군 기지에 미사일 위협을 가함으로써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미국의 개입을 차단한 채 남침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많은 안보관계자들이 "북한에게 있어서 지대지 미사일은 한반도 적화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인 미군의 전시 개입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수단인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미안보동맹에 따라 주일미군 및 미본토를 장거리 미사일의 사정권내에 둠으로써 미군의 증파를 억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미국으로서도 자신의 본토 일부가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전면전 감행은 꺼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에서 이러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가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위협을 느낀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장과 북한이 남한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은 미일, 한미 군사 동맹의 지속적인 유지·강화와 전진 배치 군사력 및 장거리 타격 능력의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한 직접적으로는 북한 인근에 PAC-3와 이지스함을 비롯한 MD의 초보적인 무기체계를 배치함으로써 북한 미사일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 스스로 강조하듯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이고 이 지역에 사활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 '파월 독트린'으로 일컬어지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의 근간은 미국의 국익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지역에서의 분쟁에는 가급적 군사적 개입을 자제하고, 사활적 이해에 걸려 있는 지역에는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서 가능한 빨리 완전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탈냉전시대 최고의 외교 목표 가운데 하나인 비확산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패권 상실까지 야기할 수 있는 상황-북한이 미국의 개입을 미사일 위협으로 차단하면서 남침하는 것-을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또한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주된 목적이 미국을 위협해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라면, 1990년대부터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온 것이나 가공할 살상력을 보유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을 설명할 수도 없다.

설령 미국이 북한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껴 북한의 남침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남침을 하거나 남한과의 전쟁을 통해 승리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역시 비현실적이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개입이 없다 하더라도 북한이 한반도를 무력으로 공산화할 만큼 강력한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20년간 누적된 군비지출이 남한의 3분의 1 정도이고 경제력이 30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북한이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비현실적인 가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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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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