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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어느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고발성 글이 하나 올랐다. 내용은 자신의 장애우 동생이 근처 유원지로 모꼬지를 왔던 몇 명의 술 취한 대학생들에게 집단으로 구타를 당해 상처를 입고 입원했지만 가해 학생의 부모가 사죄는커녕 힘있는 사람들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좋은 말로 할 때 합의를 보자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네티즌들은 부지런히 이 내용을 복사해 여러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해 학생이 다닌다는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은 비난의 목소리로 도배되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학교 당국과 경찰이 진상 조사에 나서는 등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게시판을 떠돌았던 글의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열심히 이 글을 퍼날랐던 수많은 네티즌들을 바보로 만들었으며 가해 학생이라 지목되었던 당사자와 학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의 파장력은 아직도 미처 지워지지 않고 뒤늦게 이 글을 접한 네티즌들이 또 다른 게시판에 복사해 올리는 경우가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장애우에 대한 부당한 대우, 그리고 인식의 전환이 강력하게 요구되고 공감되는 시점, 또 다수의 사람들에게 손쉽게 자신의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확산되고 있었다는 절묘한 상관관계가 상승효과를 내면서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 만큼 이 '소문'이 발휘한 힘은 강했다.
소문의 위력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소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멀리 고대 라틴어 문헌과 만나게 된다. 이 문헌들에는 '파마'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뜻이 바로 '명예', '여론', '평판', '소문'에 해당된다.
파마, 즉 소문이 본격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스」에서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파마는 '처음에는 무서움 때문에 조그맣다가, 나중에는 그것이 빠르게 공중으로 자라났고, 몸은 깃털, 눈, 혀 말하는 입, 뾰족한 귀로 덮여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대의 파마는 진실에는 관심이 없이 부조리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서의 정보 전달과 확산을 의미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증명된다.
그리스군이 패배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소문을 사람들에게 전했던 한 이발사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아테네의 정치가 티마이오스는 상습 매춘을 했다는 추문에 휩쓸려 파멸했고, 도시를 불태웠다고 알려진 로마 황제 네로의 경우 이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기독교 박해라는 잘못된 전략을 가져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던 파마도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빛의 형상, 승리를 나타내는 여신, 명예의 여신으로 그려지기도 했으며, 근대 초기에는 좋은 평판을 위한 상징으로 사용되어 유럽 궁정 예술이었던 회화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파머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오비디우스가 묘사한 '파마의 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천 개의 출입구'를 가졌으며, '어디에서 발생하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건 거기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엿듣는다'. 그렇다. 바로 인터넷의 속성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풍부한 자료에 근거하여 소문이 생겨나는 매커니즘의 효용성,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미친 파장을 통해 흥미진진한 소문의 문화사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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