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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분 동안이나 목욕탕 문 앞에서 실갱이를 벌였다.

"엄마, 목욕해야지. 그래야 내일 병원에 가지. 벌써 4일째나 목욕을 안해서 냄새가 나잖아."
"에잇, 내가 싫다는데 왜 그래. 의사가 내 몸에 냄새만 맡는데? 싫어. 나 밖에 팍 나가 죽어버릴 거야."

목욕탕 문을 붙들고 버팅기는 엄마와 어서 들어가자며 손을 잡아당기는 나와의 싸움은 이제는 서로 오기가 발동을 한다.

내일 엄마를 모시고 치과를 가야 하는데 회사에서 퇴근 후에 곧바로 가려면 오늘 저녁엔 엄마가 목욕을 해야 그나마 빠듯하게 병원을 갈 수가 있다.

얼마 전의 물난리로 며칠째 목욕을 하지 못했던 엄마를 늦게 퇴근을 해서 씻기려 하니 누워만 있던 엄마는 일어나기가 몹시 귀찮았던 모양이다.

"난 하루 종일 왔다 갔다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조금 잘만하니까 왜 자꾸 목욕하라구 난리야. 고놈의 의사가 내 이빨이 틀니인지도 모르면서..."

목욕탕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엄마의 저항과 거짓말(작화)은 계속되고.

"엄마, 왜 그래? 엄마가 오늘 어딜 왔다갔다 했다구? 회사 갔다와서 난 하구 싶어서 하는 줄 알아? 힘들기로 치면 내가 힘들지. 나도 너무 힘들어 미치겠다구. 엄마 왜 그래 정말."

20분 동안이나 실갱이로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 난, 속이 상해 마침내 소리를 치고 울구 불구 난리를 쳤다. 나의 고함 소리에 멈칫하는 엄마는 마치 겁먹은 아이마냥 급기야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억지로 엄마의 발을 한 짝 당기고 목욕탕 문을 붙들고 놓지 않는 엄마의 손을 떼어 안으로 끌어당기고 하며 겨우 변기에 앉혔다.

"너 화났니?"
"아니 엄마. 앞으론 안그럴께. 오늘만 하자 응? 엄마가 병원 가서 이빨 치료 하지 않으면 이빨 다 빠져서 밥도 못 먹잖아. 그러니까 내일 병원가서 이빨 치료 받아야지. 그러니까 목욕해야 하잖아. 앞으로는 안그럴께. 엄마 오늘 목욕하자 응?"

엄마의 손을 꼭잡고 몇 번씩 달래고 달래자 그제야 엄마는 두 손으로 귀를 꼭 막으며 목욕할 채비를 한다.

'엄마랑 오늘은 함께 자야지. 내가 소리를 질러서 엄마가 아마 놀랬을거야.'

1인용 침대라 엄마를 꼭 안고 자야 하는데 그러면 엄마는 얼마나 잘 주무시는지 모른다.

지난해 3월 출근 후 이상한 예감에 허겁지겁 집으로 다시 돌아가 현관 문을 연 순간 구부정하게 서 있던 엄마.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물이 줄줄 흐르고 휑한 엄마의 볼을 패고 있는 주름 사이로 멍하게 벌어진 입은 마치 무엇인가를 말하며 허위허위 저승사자를 따라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정신을 놓으셨다.

온 몸이 굳어가는 병인 파킨슨 씨에 의한 치매와 노인성치매를 함께 앓고 있는 엄마. 5살배기의 정신연령이 되어버려 늘 누군가 보호자가 함께 있어야 하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엄마.

입원 당시 막내딸도 알아보지 못했던 엄마의 잠든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울고 또 울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엄마가 돌아가시지 않기만을 기원했던지.

"엄마,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앞으로 안그럴테니까 제발 제발 정신만 차려."

엄마가 이리 되신 것이 평소의 나의 고약함 때문인 듯싶어 울며 불며해도 몇 날 며칠을 깨어나지 않고 잠만 주무시던 엄마. 그렇게 되어 버린 후 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울던 나에게 어떤 지인은 "엄마가 효도할 기회를 주시려 그리 되셨나 보다"며 위로를 해주셨다. 그의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던지.

치매란 것이 욕을 심하게 한다든지, 식탐을 낸다든지, 오줌 똥을 가리지 못한다든지 그렇게 다양하게 증상이 나타나는데 엄마의 경우는 너무나 다행스럽게 작화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엄마는 끊임없이 말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말이란 과거의 일들을 그대로 나타날 때도 있고 TV의 내용이 현실과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혹간에는 누군가의 흉을 지속적으로 본다든가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이명도 있어 계속 곡소리가 난다고 하염없이 시끄러워 죽겠다고도 하소연이다.

요즘 엄마는 얼마나 달변가가 되었는지 엄마의 말솜씨는 웬만한 개그맨을 뺨칠 정도로 그 말의 재치와 순발력이 뛰어나다.

"전두환은 요즘 뭐하냐? 내가 며칠 전에 걔네 집에 지난번에 가니까 얼마나 사람들이 많던지."
"엄마가 뭐하러 갔는데?"
"나 뭣 좀 얻어 먹으러 갔지. 그 많은 사람들한테 퍼먹이는 거 보면 옛날에 돈 꽤나 해 먹었나봐. 그러니까 사람이 그렇게 버글버글대지."

TV의 출연자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엄마는 옷을 벗고 있는 나를 보면 기겁을 한다. 얼마전 피부병으로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고 약을 바르다 등에 약을 발라달라 했더니 벗고 있는 모습에 영 못마땅해 입이 나와 있던 엄마는 내 등에 약을 발라주며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하며 하는 말. "앞으로 널 옷벗고 약바르는 여자라고 부를 거야."

"여보세요. 엄마 나야."
"왜 여태 안와? 빨리와. 빨리 안오면 문 안열어 줄 거야."

엄마는 너무나 귀엽다. 엄마가 이렇게 곱게 병이 드신 것만으로도 난 너무나 감사하다. 출근한 후에도 난 엄마가 보고 싶다. 빨리 집에 가야지.

덧붙이는 글 | 사람의 몸은 점점 건강해지고 각종 스트레스에 정신은 한없이 허약해 지고 있어 우리 모두는 예비 치매환자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엄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치매가 얼마나 큰 사회 문제인지 그리고 치매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정말 가족의 사랑이 가장 효과가 큰 약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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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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