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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현장 1

7월 21일 새벽 3시 40분 무렵 자유로. 일산으로 가던 택시 한 대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택시는 도로 옆 풀밭으로 튕겨 나가 문이 땅바닥에 닿은 채로 엎어졌다. 함께 타고 가던 손님은 택시에서 튕겨나가 5미터쯤 떨어진 풀밭에 떨어졌다. 이 손님은 다름 아닌 이경희 씨였다. 다행히 중상은 아니었지만...

현장 2

7월 21일 아침 8시 30분 구로에 있는 한 영안실. 이틀 전 스물아홉의 나이로 자살한 한 여성의 시신이 화장터로 옮겨졌다. 아버지는 마흔이 다 되어 낳은 첫딸인지라 애정이 각별해, 사흘 내내 우셨다. 그 영안실엔 망인의 절친했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결혼할 때 기념촬영부터 모든 일정을 함께 했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를 잃은 지라, 사흘 동안 영안실을 지켰다. 그렇게 친구를 보낸 사람은 이문희 씨였다.

이경희와 이문희. 지난 7월 16일 기자는 오마이뉴스에 올린 ‘어느 두 아줌마의 두 달 살이 인생’을 통해 이 두 사람의 삶을 소개했다. 이어 7월 18일에는 이경희 씨가 ‘감옥 안 남편이 건넨 결혼10주년 선물’이란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올리기도 했다.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지 채 일주일이 안 된 지난 토요일인 7월 21일, '…두 달 살이 인생'의 주인공이었던 이경희 씨와 이문희 씨는 그들의 인생에서 좀처럼 겪지 못할 일을 겪었다.

이문희 씨가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은 때는 대구교도소에 있는 남편 면회를 갔다 온 후였다. 자살한 친구는 이문희 씨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또 다른 친구와 셋이서는 단짝이었다고 한다. 2년 여 전 이 씨의 남편이 구속되고 나서, 썰렁한 신혼집에 혼자 있기 무서울 때 함께 밤을 보내주었던 친구였다. 이문희 씨가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여수로 갔을 때도 그 친구는 동행해주었단다.

남편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면, 더욱이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구속돼 있다면 친한 친구라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 법인데, 그 친구는 이문희 씨 곁에서 그렇게 힘이 되고 기둥이 되었었다. 그런 친구를 이문희 씨는 떠나보낸 것이다.

"내 결혼식을 챙겨준 친구를, 나는 결혼식 대신에 장례식을 챙겨주네요. 저의 한 부분이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한 이경희 씨는 일산의 한 정형외과에 입원했다. 택시가 뒹굴고 몸이 튕겨나갈 정도였음에도 하늘이 도왔는지 현재로서는 왼손 손가락 한 개가 부러진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운전했던 기사도 무사해 서로 살았음을 확인하고는 부둥켜 앉을 정도였다니 놀라움과 안도감이 교차하던 그 '순간'을 이경희 씨는 쉽게 잊진 못하리라.

이경희 씨와 이문희 씨는 주말의 악몽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남편의 석방과 관련해 위안이 될 법한 일들이 많았다.

7월 20일 저녁, 이경희 씨는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CBS의 '시사자키'담당 기자를 만났다. 그 기자는 오마이뉴스에 소개된 이경희 씨 기사를 읽고는 취재를 하러 온 것이었다. 이 씨는 아이들을 일산에 사는 여동생에게 맡겨 두고 나왔다. 이어 친구 영안실을 지키던 이문희 씨가 뒤늦게 합석해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론의 힘이 남편의 사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들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상황이니 CBS의 취재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CBS 취재가 끝나고 이들은 다시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한 가지 더 있었던 것이다.

이날 저녁 이경희 씨는 KBS 인간극장의 담당 PD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사연인즉, 두 아줌마의 삶을 취재해볼 생각인데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인간극장에서 다룰 만한 사람들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사전취재였다.

전화를 받은 이경희 씨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TV에 이들의 사연이 소개된다면 남편의 사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권유를 듣고, KBS에서 취재를 한다면 응할 결심을 했다. 이날 호프집에서는 이문희 씨와 이경희 씨가 이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런 기쁜 소식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기도 전에, 이문희 씨는 자살한 친구의 영안실로 달려 갔고, 이경희 씨는 교통사고로 병원신세를 지고 만 것이다.

악몽일수록 자꾸 과거를 돌이키듯이, 이 두 아줌마의 현재 역시 자꾸 과거를 되돌리게 한다. 금요일 저녁 술자리만 가지 않았다면, 아니 CBS 취재가 없었다면,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남편이 구속되지 않았다면…. 이문희 씨 역시 남편이 구속되지 않았다면, 남편 석방을 위해 쓰던 시간을 그 친구에게 조금 더 나눠주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이 가정의 시간은 어찌 보면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허무만 깊어질 법한 것이다.

현재 이경희 씨는 뼈 봉합이 잘된다고 해도 최소 2-3주 정도는 입원해 있어야 한단다. 엄마에게 떨어지기 싫은 승지도 덩달아 병원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애 날 때 빼고는 병원에 입원하긴 처음"이라는 이경희 씨의 마음은 조급하다.

당장 오늘은 이휘호 여사에게 남편의 사면을 바라는 탄원서를 쓸 생각이었다. 이전에 이미 대통령께도 탄원서를 쓴 적이 있는지라, 대통령이 외면한 탄원을 영부인이 관심을 가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이 씨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개 대통령에게 직접 말을 한두 마디 건넬 수 있는 사람에게 사면을 바라는 사정을 얘기하면 효과를 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평범한 아줌마인 이 씨가 그런 권력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탄원서를 생각한 것인데 갑작스런 사고로 지금으로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 씨는 화요일에는 남편 면회를 가겠다고 해 놓은지라, 그도 걱정이다.
"뭐라고 둘러대나 싶어요. 무슨 일 있어 못 간다고 하면, 의심할 텐데… 막막하네요."
그래서 이경희와 이문희 씨의 지난 주말은 내리는 비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 라디오를 켜니 이런 광고 멘트가 들린다.

'치과의사 민아무개입니다. 저는 요즘 병원업무가 끝나면 재즈에 푹 빠져 삽니다. 자산관리는 OOOOO에 맡기시고 당신은 인생에 투자하십시오.'

즐기는 인생에 투자한다? 이문희 씨와 이경희 씨 역시 인생을 즐기고 살고 싶지 않을까. 재즈는 아니더라도 집에서 맥주 한 캔 따 놓고 남편과 비디오라도 한편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을까.

민아무개 씨의 삶이 잘못된 것은 없지만, 그런 문화생활마저도 할 수 없는 이경희, 이문희 씨에겐 치과의사 민 씨의 삶은 너무나 다른 세상인 것이다.

사회 모순은 권력의 힘으로 '한순간에'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모순에 끼인 사람들의 삶은 힘겹고 눈물겹다. 또한 그 모순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한순간에' '쉽게' 결실을 맺지 못한다. 서명용지 한 줄 더 채우는 일부터, 제대로 읽어볼지도 모를 탄원서를 난생 처음 써보는 일까지, 작고 사소한 것들이 쌓여야만 희망을 조금 가져볼 수 있다.

이경희 씨와 이문희 씨 역시 '모순에 끼인 사람'으로 살고 있다. 때론 예고 없이 다가온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을 겪으면서. 그런 삶이… 너무 고달프지 않는가.

이경희 씨와 이문희 씨. 이 두 아줌마의 지난 주말 삶이, 돌아보면 순간이겠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 기구하고 고달프지 않았을까?

오늘 내리는 비가 그 고단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씻겨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경희 씨와 이문희 씨의 남편인 김경환 심재춘 씨 사면을 위해 사랑과 관심을 주십시오. 마음을 보태주실 분은 인권실천시민연대 홈페이지(http://cham.jinbo.net/maybbs/sign.php?db=hrights&code=cshr)에 마련된 서명란에 서명을 해 주십시오. 

김경환 심재춘 씨 석방을 위한 서명용지를 보냈더니 어떤 분이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핏볼테리아라는 아메리카대륙 태생의 개를 좋아하는데, 이 개는 싸움에서 지는 경우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최소한 비긴다고 하더라….”
이번 일에서 비기는 일은 사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경희 이문희 두 사람의 가정을 평상시처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일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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