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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돌아가신 후에야 아버지를 만나다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영정 앞으로 다가가기 힘든 듯 그는 영안실을 빙빙 돌며 안경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쳤다.

오늘(25일) 오후 3시 20분쯤 98년 한총련 의장을 지낸 손준혁(29)씨가 구속집행정지로 구치소를 나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영남대의료원을 찾았다.

하지만 준혁씨의 아버지 손영상(64)씨는 2개월여 동안의 투병 생활을 끝으로 오늘 오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결국 준혁씨는 아버지의 주검만을 확인 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준혁씨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에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재 기자와의 인터뷰를 일단 거절하고 있는 상태이다.

▲살아생전 손영상씨의 모습-지난 6월말 경남 양산의 외딴 요양원에서 요양 중 촬영한 사진 ⓒ 이승욱
'손준혁 학생 석방을 위한 비상대책위'(이하 대책위)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 준혁씨가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무척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하고 "일단 마음이 진정된 후에야 인터뷰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준혁씨는 오늘 오전 평상시와 같이 구치소안에서 하루 생활을 시작했다. 오전 11시쯤 교도관들이 나가야 한다는 말에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했다. 그러나 교도관들은 이에 '그렇지 않다'고 말해줬고, 결국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야 아버지의 '비보'를 전해들었다.

준혁씨를 인도해 준 한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오는 30일 오전까지 아버지의 장례절차를 지켜볼 여유가 있다고 말하고 가족들에게 손씨의 신병을 인도했다.

준혁씨가 도착하기 전까지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던 어머니 이정자씨는 "그나마 죽은 후에라도 아들이 아버지 곁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아들 손씨를 보자마자 오열하며 "왜 이제야 왔느냐"고 아들을 품에 안았다.

고 손영상씨의 죽음 앞에 학생들이 슬픔을 함께하고 있다ⓒ 이승욱
그러나 준혁씨와 학생들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진단서 제출, 판사에 대한 면담요청 거부, 검찰의 수사지연 등, 최근 위독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확인했음에도 '인륜을 저버리게 만든 공안기관, 사법당국'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현재 영남대를 비롯해 대구경북지역 대학생들은 대구지방검찰청 앞과 시내 중심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반인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시민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부산경남 지역 등 타지역 학생들도 점차 대구로 모이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1신>담도암 앓던 전 한총련 의장 아버지 끝내 오늘 오전 숨져

부자지간의 인륜이 사문화된 법률보다 앞설 순 없는 시대를 우리는 아직도 살고 있는 모양이다. 남과 북 정상이 만난 후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애틋한 부정(父情)의 목소리도 결국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의 높은 '철조망'을 넘지는 못했다.

ⓒ 이승욱
오늘 오전 7시 35분,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담도암 말기 암환자로 투병해오던 고 손영상(64) 씨가 결국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손 씨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 못했다.

생을 마감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 손씨의 아들 준혁(29) 씨는 왜 함께 할 수 없었을까. 단 한가지 이유는 그가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이유뿐이다.

준혁 씨는 지난 98년 대구 영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전국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운동조직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연합) 의장으로 일했다. 결국 준혁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중죄'를 짓는 죄인이 돼 버렸고 98년 이후 4년여에 걸친 수배생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배생활 내내 손 씨와 아들 준혁 씨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간간이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대부분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수배생활도 지난 5월경 준혁 씨가 보안수사대에 의해 검거되면서 끝을 맺고 만다. 물론 쇠창살을 가운데 두고 만나야 하는 만남일지라도 아들과 아버지의 만남이 이제는 가능하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손씨는 아들 준혁 씨가 검거되기 4,5일 전쯤 평소 소화가 잘 안 돼 찾았던 병원에서 담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앞으로 1, 2개월을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병원 의사의 소견과 함께...

하지만 경찰서 유치장에서 손 씨는 아들 준혁 씨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난 6월 말 경남 양산의 외딴 요양원에서 지내던 중 손 씨는 이렇게 기자에게 말을 했다. "걱정만 시킬 것 같아서. 뭐 뾰족한 수도 없지 않은 거잖아. 그 안에 갇혀서 마음만 고생하지."

자신의 몸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들 걱정이 한발 앞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병상을 지키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서러움은 다를 리가 있을까. "병원에 있을 때 옆에 내 나이 또래 사람이 입원해 있었는데, 거기 그 사람 아들이 있대. 그 아들이 병수발을 하는 것을 보니깐 왜 그렇게 서럽던지."

물론 최근까지 이런 손 부자의 애틋한 사연에 '손준혁 학생을 아버지의 품으로'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준혁 씨가 검거된 후, 그리고 준혁 씨의 아버지가 담도암 말기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준혁 씨의 몸을 잠시라도 아버지의 곁에 두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대구 양심수 후원회, 영남대민주동문회 등 '국가보안법 철폐와, 손준혁 학생 조속한 석방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서는 얼마의 삶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준혁 씨 아버지의 상황을 고려해서 조속한 시일 안에 '보석'이 가능하도록 백방으로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전혀 소용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안타까운 부정의 사연을 전해들은 시민들의 동참도 많았다. 그리고 재판부에 보석신청을 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은 기다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검찰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로 결국 포기하고 말아야 했다고 대책위 관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 손씨와 아내 이정자 씨. 그도 만성적인 심장병에 시달리고 있다. ⓒ 이승욱
지난 18일 준혁 씨의 사건과 관련한 재판의 1차 심리가 대구지방법원에서 있었다. 당시 대체적인 변호인단과 재판부의 입장은 조속한 재판 진행으로 준혁 씨에게 선처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날 담당검사는 재판부에게 추가기소 내용이 있다며, 그리고 수사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결국 1차 심리는 방대한 조사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검사의 요구로 한달 반이나 뒤인 오는 8월 29일로 연기가 돼 버렸다.

대책위 이형근 씨는 "재판부에서도 이번 준혁 씨의 보석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하지만 검찰이 재판 3주전부터 아무런 조사를 하고 있지 않다가 애초 공소장에 없었던 '방북 대표 파견'을 이유로 재판을 연기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검찰 측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 씨는 "검찰의 이런 행동이 치밀하게 계산된 것으로 준혁 씨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이런 세상의 다툼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지난 22일부터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된 고 손영상 씨는 아들의 병수발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평범하게 우산대 만드는 일로 평생을 살아왔던 손 씨에게 '한총련 의장 아들 준 죄'(?)로 죽음을 앞두고 빌었던 마지막 소원을 결국 우리 사회는 들어주지 못했다.

"걱정은 안해 내 자식이 사람을 때려죽인 놈이가, 아님 강도짓을 했나... 죄라면 정부에서 하지말라는 것 한 것밖에 없지. 몹쓸 죄 지은 것도 아니재. 다만 빨리 감옥에서 나온 그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지. 나 만나는 것보다도 그 놈이 편해야지." 살아생전 그에게 '희망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가 한 말이 귓전을 울린다.

한편, 어제밤 12시까지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은 오늘 오전 9시부터 다시 이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늘 오후 3시에는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이 시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같은 시각 검찰청 앞에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 대책위의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고 손영상 씨의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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