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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데리다(J.Derrida)는 그의 책 <마르크스와 유령들>에서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에 나오는 "유령"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 가운데서 환영(유령)에게 말을 걸거나 그것과 관계할 자격을 갖춘 학자란 결코 없었다는 현실을 꼬집는다.
즉 유령적 성격의 가상적 공간에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는 사실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죽음이 때로는 살아 있는 것보다 강력할 수 있다고 한다.
황석영은 그의 최신작 소설 <손님>을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소설 형식에서 벗어나 전에 없이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해내고 있다. 작가는 데리다의 말처럼 망자를 불러내어 초혼굿을 벌이듯 진지노귀굿 열두마당의 순서로 이 소설을 엮어가고 있는데, 그의 소설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치 동일한 현실에서 대화를 나누듯 모두 중요한 주인공들이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이른바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이야기이며, 소설 속의 산 자와 죽은 자의 회상은 '공공적인 이야기'로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인간의 시간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다.
작품 기술 방식 또한 독특한데, 작가는 소위 현대 리얼리즘의 객관이라는 것을 문제삼으면서 1인칭이었다가도 갑작스레 3인칭이 되는가하면 대화나 상황묘사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곁들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작가의 일방적인 기술이 아니라, 여러 화자들이 자기들의 입장에서 스스로 겪은 체험담을 말하게 함으로써 작가의 평면적인 사실 묘사를 넘어 매우 입체적이고 활동적인 작중 인물들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의 독특한 소설 구성보다도 우리를 더욱 강렬하게 사로잡는 게 바로 그가 쓴 소설 내용이다. <손님>은 한국전쟁 전후 평북 신천을 중심으로 벌어진 기독교계와 사회주의자들 간의 혈투가 낳은 비극을 그리고 있다.
당시 평북은 한국 기독교의 요람이었다. 기독교의 걸출한 인재들이 거기에서 배출되었으며, 그 곳 기독교인들 중에는 지주들과 장사를 통해 돈을 번 소자산가들도 많았다. 사회주의계에서는 이러한 소자산가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숙청대상으로 놓음으로써 반사적으로 당시 기독교 내에 극심한 반공이데올로기가 형성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교회사를 들춰보아도 한국전쟁 전후 기독교인들과 공산주의자들간의 심각한 갈등을 보여주는 사건들에 대한 기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령 1945년 9월 윤하영과 한경직 목사가 주축이 되어 만든 기독교사회민주당의 용암포 지부 결성식 때에 공산당원들이 들이닥쳐 홍석황 장로가 현장에서 타살되고, 간부 전원이 구타당했으며 대회장이 난장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에 항의 집회하는 기독학생들에 대한 소련군 전투기의 무차별 기총소사로 50여명이 죽고 부상당하는 참사도 뒤따랐다. 뿐만 아니라 1946년 3·1절 기념행사 때에는 양측간에 엄청난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친 공산당 기독교 조직인 조선기독교도연맹이 만들어지면서 기성교회와의 잦은 마찰이 생겼는가 하면, 우익 기독교청년들과 좌익 공산주의 청년들 사이에서도 자주 이러한 충돌이 일어났다.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나 공산주의나 우리 민족에게는 공히 "손님"이다. 단순히 좋은 의미의 손님이 아니라, 서양에서 넘어온 무서운 유행병 천연두로 한 번 발발하면 사망까지도 이르게 되고 간신히 죽음은 면하더라도 얼굴에 보기 흉한 상흔을 남기는 "손님마마"이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그 내세우는 신앙과 이념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실에서는 해방정국의 시기에 고요했던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소용돌이와 풍파를 일으켰음이 분명하다. 둘 다 자신들이 믿는 바와 이상이 너무나 뚜렷했고 타인은 안중에도 없을 만큼 확신에 차 있었기에 이러한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았나 싶다. 서로의 놓칠 수 없는 기득권과 주도권 싸움이기도 했고.
이 싸움에서 밀려난 기독교 우익세력들은 대거 월남하여 남한의 기독교 핵심 인사로 자리잡았고, 대개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반공, 승공, 냉전논리를 앞세우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도 그 악몽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보이지 않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북한을 방문하여 체류할 당시 둘러보았던 자기 고향 신천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과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들을 취합하여 이를 소설화하였다 한다. 그러므로 소설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학살극들은 죄다 사실에 가깝다.
<손님>에 나오는 재미 있는 사실은 죽은 자들간에는 이승에서 제아무리 원수지간이었다 해도 맺힌 원한을 풀고 모두 화해한다는 것이다.
살아 있을 당시에 죽자살자 아등바등 싸우고 다투었던 자들도 죽음 안에서는 모두 부질없는 지난 일들이나 되는 양,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다만 망자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진지노귀굿이 걸판지게 베풀어질 뿐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하여 앞으로 겨레의 통일과정에 나타날 남북한의 과거사 책임공방과 사무친 원한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일정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민족 간의 좌우 대립과 충돌, 비극은 민족 내부에서보다는 근본적으로 강대국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 무작정 덮어두고 잊자는 당위가 아니라 망자들의 피맺힌 해원과 통일로 가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곰곰히 되새겨 보자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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