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소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경쟁이라도 하듯 온몸을 들쑤셔놓는다. 혼자 듣기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더 듣기위해 시작한 방송. 다니던 일터를 정리하고 잠시 쉬면서 이른 아침 문을 열게 되었다. 아침 분위기가 가벼운 가락을 바라는 듯하여 jazz만을 듣기로 작정하고 문을 열어두었는데 의외로 많은 님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부제로 "오늘 같은 날 산오르기도 좋을까"를 달아놨는데, 다들 그 말이 절실했을까. 산에 가냐고 들어오자마자 묻는다. 결국 산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방에 들어온 어떤 님과 내게는 조금 먼 강화도 마니산을 가기로 했다. 그 님은 마니산을 여러번 갔지만 참성단을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서해에 해당하는 그 곳을 떠올리면서 아아...일몰...그랬다. 일몰이 아름다운 바다가 바로 거기 있다는 생각에 차분함을 한껏 맛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았을 것이다.
신길역 앞에서 2시에 만나 길을 가자니, 점점 벗어나는 곳은 희뿌연 매연만이 가득한 서울. 점점 좁은 길과 양 쪽으로 피인 풀들과 작은 꽃들. 키가 제법 자라 여물대로 여문 옥수수대와 아직은 덜 여문 나락들. 아직 휴가의 끝물인 듯 1차선 도로는 줄을 서게 하고 에어컨 바람이 아닌 풀냄새를 실은 바람이 미지근했지만 마음만은 상쾌했다.
그저 몇 마디 말보다는 자연 속에 눈을 쉬게 하고 몸 속 가득 풀바람을 맡고 내뱉는 나의 답답함과 씻겨가야할 일들이 하나하나 접어지고 결국 우린 네시 반 정도가 되어서야 마니산 주차장에 닿았다. 마침 해는 내려가고 있었는데 참성단을 향하는 계단을 놔두고 단군로를 통해 오르기로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예전엔 참성단을 향하는 계단으로 올랐다고 했다.
단군로는 제법 쉬웠다. 몸 속 복잡한 것들이 조금은 잠든 그런 곳처럼 푸근하고 가끔씩 내려오는 솔바람에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30여분 올라가자니 동안 산오르기를 게을리한 탓이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가슴이 콱 막혀옴에 쉬어갈 것을 부탁했다. 나를 업고 내려오는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이어서란다.
나무 의장에 앉아 바라보는 앞은 나무에 가려 보일락말락하는 서해였다.
마음을 가다듬는 모습으로 눈을 살포시 떴다. 그 곳엔 바쁘게 돌아다니는 일상의 사람들이 보이고 조금 있다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내가 나를 볼 수 있는 그 잠깐 사이 해는 점점 내려오고 서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생각이 서해에 가 있는 동안 눈 앞엔 토실토실하게 여문 밤나무가 잔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간혹 덜 여문 밤송이들이 굴러다니긴 했다.
다시 오르기로 했지만 결국 10여분 오르다 너럭바위에 눕고 말았다. 어찌나 넓든지 둘이 누워 하늘을 보는 데 하늘이 바다였다. 마치 바다를 보고 있는 듯 한 착각이 일면서 모로 누우니 마을과 함께 머얼리 섬이 몇 개 보인다. 희미하게 등대도 보이고 바람을 싣지 않은 바다는 꼼짝없는 수도승과 같았다. 더욱이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나 답답한 삶을 살아왔는가. 잠깐이라도 서서 매연 섞인 바람일망정 땀 흘리며 서있던 적이 있었는가. 발은 늘 동전 몇 푼과 지폐 몇 장을 위해 닳아졌고, 마음은 늘 마음처럼 해내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희망을 추첨했었다.
푸우~
사람들은 없고 어디서 구구구 산비둘기 소리가 나고 머리 위로 까치들 몇 마리 날아간다. 그래도 흔히 보이는 것이 기쁜 소식을 가져다준다는 까치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다시 숨을 트고 오르다보니 가파른 바위가 몇 개 나오고 더 선명한 마을과 서해. 표말이 약수터를 가리키는 바람에 우리는 원하지 않던 산내려오기가 이뤄져버렸다.
약수 한 사발 먹고 참성단을 오르려 했는데, 내려와도 보이지 않는 약수.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씻고 마음을 비우며 내려오니 촛농 가득한 바위와 누군가 기도를 한 흔적을 보았다. 나름대로 단군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수양터라고 한다. 차라리 그 곳에 피인 가녀린 봉숭아가 더 힘차보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산 입구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담아 우린 아쉬운 마니산행을 마쳐야했다. 다음엔 꼬옥 참성단을 올라 민초들에게 단비를 내려주라는 기원을 해야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는 뉘엿뉘엿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아쉬운 것은 한 시름 어디 덜어두었나 싶었는 데 다시 군살이 되어 내 몸에 달라붙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열심히 사람들 틈에서 잘 살아야한다는 각오를 출렁이는 약수물병에 담아왔다.
또 산향기가 그리워지면 운동화 신고 모자 눌러쓰고 나서리라. 산이 거기 있으므로.
덧붙이는 글 | * 이 곳엔 '신비의 갯벌'이라 불리는 세계 5대 갯벌 중의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조개, 낚지, 새우, 게 등의 해양생물이 살고 있으며,계절에 따라 남북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 천연기념물 노랑부리 백로 등 희귀 철새 50여종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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