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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망하면 회사의 남은 자산은 처분하면 된다. 그러면 청산된 회사의 '브랜드 자산'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실리콘밸리 닷컴 기업의 줄도산이 계속되면서 이들이 사용하던 서버나 집기 등 고가의 자산들이 헐값에 경매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지금 이들 기업의 후원을 받아온 옥외매체들이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팩벨 파크는 인터넷 수퍼마켓 '웹밴'과 후원계약을 체결하고 관중석을 비롯한 구장 곳곳에 수만개의 '웹밴' 로고를 부착했다. 문제는 몇 달 전 '웹밴'사가 매출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청산되었다는 것. 팩벨 파크는 '웹밴'으로부터 수년치에 해당하는 후원금을 이미 지급받았다.

구장 측은 이미 도산해서 없어진 회사의 로고를 야구장 곳곳에 계속 남겨놓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분명히 수백만불의 광고대금을 이미 선불로 받은 마당에 '웹밴'의 로고를 제거하는 것도 비윤리적인 처사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처한 지경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다.

며칠 전 '컴팩'을 인수합병한 'HP'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산호세에 본사를 두어왔던 컴팩은 지역사회 내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다양한 기부활동을 벌여왔으며 그 중에는 산호세에 건설해 기부한 '컴팩 아이스링크'도 포함돼 있다.

HP의 고민은 수천만불의 경비를 들여 얻어낸 '컴팩'이라는 아이스링크의 이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 HP로 합병하기로 한 마당에 '컴팩'이란 이름을 고수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HP로 이름을 바꾼다면 이미 투자된 수천만불의 브랜드 가치를 허공으로 날리고 만다. HP가 컴팩을 인수했을 때는 컴팩이 그 동안 소비자들의 뇌리에 구축한 브랜드 자산에 대해서도 대가를 지불한 셈이기 때문.

마케팅 전문가들은 기업 인수 합병시 브랜드 자산 역시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코카콜라같은 경우 이 회사의 진정한 자산은 전 세계에 산재한 콜라공장이 아니라 수십년간 수백억불의 마케팅 경비를 들여 구축한 브랜드 가치라는 것이다.

세계 유명 상표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해 매년 발표하는 '인터브랜드'는 코카콜라나 IBM, 소니같은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무려 수백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계산하기도 했다. 공장 하나 빌딩 한 채 없어도 단순히 브랜드 소유권만으로 수백억달러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

HP가 '컴팩 아이스링크'의 이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향후 이 회사의 제품 전략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HP가 컴팩 브랜드의 자산가치를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면 예를 들어 기업용 서버류는 'HP' 브랜드로, 가정용 PC류는 '컴팩' 브랜드로 판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월스트릿의 합병 금융회사들이 애용하는 관행처럼 기존에 사용하던 양사의 명칭을 그대로 이어붙인 기다란 회사명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IMF 이후 우리 눈에 익숙한 수많은 기업들이 무더기로 합병되거나 외국으로 팔려나갔다. 당장의 자산 매각에만 연연하다 이들이 보유한 소중한 브랜드 자산이 홀대를 받지는 않았는지 지금이라도 차분히 되돌아 볼 일이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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