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석연휴에 개천절까지 그리고 거기에다 연휴 앞뒤로 하루씩 휴가를 내어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고향에서 보낼 수 있었다. 물론, 휴가는 비행기표를 미처 구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구실로 삼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 기간동안 우리 네 식구는 어머님과 함께 성산 일출봉을 갈 기회가 있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가본 후 처음으로 가는 것이었다. 많은 서울사람들이 서울에 살면서도 63빌딩을 가 본 사람은 드물듯이 나의 경우에도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르기 전에 내심 어머님의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 관계로 어머님이 걱정스러웠다. 과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까라는. 어머님 말씀으로는 물론 정상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큰 녀석은 이미 몇 번 손을 잡고 산을 오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관광객이 많았다. 대부분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외모가 우리와 비슷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인가 생각되었는데도 주고받는 말을 들어보니 우리 말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래서 둘째를 등에 업고, 큰 녀석은 엄마와 손을 잡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머님을 위하여 지팡이라도 하나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덕분에 나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올랐다. 얼마만에 잡아보는 어머님의 손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자식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지금까지 혼자서 5남매를 키워주신 손이었다. 그 손에서 막내아들에 대한 따뜻한 기운이 내게로 전해져 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올라가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어머님께서는 중단해야 했다. 그 전부터 앉았다 일어서면 무릎이 아플 정도로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그게 문제가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는 중간 중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계시고, 우리 네 식구만 올라갔다.

중간쯤 올랐을 때,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관광지에도 으레 마련되어 있듯이 이곳에도 전망을 보다 잘 살펴볼 수 있도록 이용요금이 300원인 유료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근데 큰 녀석이 대뜸,

"아빠, 돈 줘봐!"라는 것이었다.

매번 존대말을 쓰도록 말끝마다 얘기를 해 주지만 아직까지도 그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아뭏든 그 한마디는 나를 어리벙벙하게 만들었다. 누가 동전을 넣고 망원경을 이용하는 것을 본 것인지(근데, 시간상으로 볼 때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았는데 어쨌든), 분명 망원경에 돈을 넣겠다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퇴근하면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책상위에 올려 놓으면 이 녀석이 그것들을 집어서 저금통에 넣도록 했었는데, 이 때 그것이 돈이라는 것은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곳에 이용되는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준 적이 없었다.

물론 그 한마디로 해서 돈의 쓰임새를 큰녀석이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부모에게 요구할 줄을 알고 그 요구를 처음 받았던 그 순간이 내게는 어쩌면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결국 그 말 한마디는 정상까지 올라가서 누릴 수 있었던 정상 정복감을 느끼거나,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전망을 감상해 보는 그 이후의 시간동안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자식이 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일종의 삶에 대한 성취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