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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o란 스페인어로서 '기백있고 남자다워 여성에게 인기가 있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스페인의 투우사 정도를 연상하면 되겠다. 국내에서 마초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유행했던 때는 미국 프로레슬링 WWF가 소개되면서부터이다. 연약하고 아름다운 엘리자베스라는 여인을 보호하며 모든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용감무쌍한 마초맨의 모습이 그때까지의 '마초'의 이미지였다.

이렇듯 서구의 어원적으로 보면 마초란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이 최근 들어 사이버를 통해 또 다른 부정적인 의미로 소통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주로 여성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에 몰려가서 온갖 사이버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이버)마초들이 그 주범들이란다.

요즈음에는 사이버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흔히 마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때의 마초란 '위험한 남자'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이다. 폭력적인 말투와 몸짓 그리고 언제든지 저지를 태세를 갖추고 있는 성폭력적인 자세 등등, 마초들은 그야말로 인간 시한폭탄 정도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마초는 더 쉬운 방법으로 구분이 되는 수도 있다. 바로 마초란 곧 '여자가 싫어하는 남자'이다. 특히 좋은 의미로서의 개인주의를 체득하고 있는 현대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개념적 의미로서의 마초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초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자기가 좋으면 만나는 것이고 자기가 싫으면 피하는 것 아니겠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가을동화>의 터프가이 원빈은 부정적 의미에서의 마초적 습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내가 널 살게.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요즘 이런 말 내뱉을 수 있는 간 큰 남자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멋있으면 그만이지. 실제로 내 여자 친구는 나에게 원빈처럼 말해보라고 요구하는 통에 애를 먹기도 했었다.

마초란 말을 어원적으로 다시 찾아낼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남성들의 본능을 인정한다면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이버에서 욕설을 퍼붓는 마초들, 그리고 현실에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마초들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희들 그러면 여자들이 싫어해" 바로 이 말이다. 진정으로 뭇 여성들을 거느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여자들이 싫어하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 방법이야 마초든, 젠틀맨이든 각자의 조건에 맞춰 알아서 택하면 된다.

그러므로 'A급' 칼럼니스트 김규항이 자기 자신의 마초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것도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

"그람시가 감옥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엔 “계집애처럼 칭얼거리지 말고…”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그 구절에 거부감을 느끼는 내가 적이 대견했다. 나는 인류가 낳은 가장 완전한 인간 가운데 하나인 그람시보다 (단지 수십년 늦게 난 덕에) 좀더 개선된 마초인 것이다."

나는 "계집애처럼 칭얼거리지 말고"라는 말에 대해 거부감을 떠나 아예 그런 개념이 없다. 즉 그런 표현 자체를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김규항보다(십수년 늦게 태어난 덕에) 더 개선된 마초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내가 대견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냥 당연한 것 아닌가? 하루종일 칭얼거리는 여자도 있을 수 있고 남자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무엇하러 '계집처럼' 이라는 수식어로 표현한단 말인가? 어쩌면 그것은 여성에 대한 별다른 가해의식을 느끼지 않는 나와, 김규항의 세대 차이일지도 모른다.

김규항 정도의 세대는 너무나 당연한 것을 발견하고서도 개선된 마초라며 대견스러워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남녀평등의 역사에 대해 어떠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여성들의 입장도 똑같다. 쾌걸 조로와 괴도신사 루팡이 마초일까? 고민할 필요없다. "누가 날 보호해주고 도와주는 것 싫어" 이런 여성들은 마초로 보면 되는 것이고, "상관없어. 그냥 멋있으면 돼" 이런 여성들은 쾌남아로 보면 되지 않겠는가? 그와 관련해서 또 한 명의 동양 마초를 소개할까 한다. 장대한 기골에 용맹한 무용을 자랑하면서도 마치 여성과도 같은 아름다운 얼굴을 한 미남자는 이 시대 최고의 마초인 장비와 횃불을 켜놓고 밤을 지새며 창칼을 겨루었다. 승부를 가르지 못한 이 싸움은 <삼국지> 최고의 명승부라 불린다. 바로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 사나이의 이름이 마초(馬超)였다.

나 역시 수도 없이 마초 소리를 들은 바 있다. 물론 거기에는 주로 '합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합리적인 마초란' 무슨 뜻일까? 역시 나는 곧바로 고민을 포기했다. 나를 합리적인 마초라고 생각하는 여자란 곧 나를 싫어하는 여자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 나도 그런 여자와 안 만나면 그만 아닌가? 세상의 여자의 취향은 각기 다양하니까.

Macho면 어떻고 마초면 어떻고 馬超면 어떤가? 여성에게 피해주지 않고 사랑받으면 그만이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예술 웹진 미인(http://www.meinzine.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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