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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때로 감동받고 때로 위안받는 책이 한 두권 뿐일까요? 하지만 특히 엄마로서의 내게 길잡이가 되어준 두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8년 전, 뱃속에 처음 생명이란 것을 가졌을 때 기쁨보단 두려움, 흥분보다 낯선 것에의 불안함 같은 것들이 더 크게 나를 지배했습니다. 그때 내게 가장 큰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었던 것은 오리아나 팔라치가 쓴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였지요.

남성들도 두려워한 저널리스트 팔라치, 그리스의 혁명가를 사랑했던 그녀의 정열과 카리스마는 미혼인 내게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아이를 가졌을 때, 어머니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녀의 고민과 아이에 대한 감정,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자각 같은 것이 이 책에는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지요. 그리고 나는 팔라치와 똑같은 여성적인 경험을 하면서 그녀가 쓴 이 책에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팔라치의 글을 따라 나는 뱃속에 있는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여자아이이기를 바란다. 언젠가 내가 경험한 것을 너도 경험해주었으면 한다...네가 여자아이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가 하는 것과 같은 말을 절대로 너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지만 사내아이로 태어나더라도 나는 만족하게 여길 것이다. 아마도 한 층 더 만족스럽게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숱한 굴욕, 예속, 수탈을 당함이 없이 살아갈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만일 네가 사내아이로 태어난다면 언제나 내가 꿈꾸고 있었던 것과 같은 사내-약한 자에게 다정하게, 권력자에게 엄격하게, 너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너에게 명령하는 자에 대해서 인정사정 없는 사내가 되기를."
지금 내가 아이에게 주는 변치 않는 엄마의 메시지는 바로 팔라치의 것입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두 번째 강력하고도 폭풍같은 메시지를 <네모의 책-니콜 바샤랑, 도미니크 시모네 지음/현암사 발간>에서 받았습니다. 어린이책이라기엔 너무 두껍고, 표지 역시 지나치게 사색적이라 처음 이 책을 선택할 때, 많은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자칫 지루하고 현학적인 이야기들의 나열은 아닐까 하는 염려였죠.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많은 페이지를 접어 놓을 수밖에 없었지요. 나중에 내 아이에게 꼭 되돌려주고 싶은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를 모두 마쳤을 때 그동안 가벼운 베스트셀러들로 한없이 비워지기만 했던 나의 이성과 감성엔 우물 저 밑바닥에서부터 물이 차오르듯, 사색과 성찰의 샘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인간이 뭐야? 우주의 끝은 어디지? 역사가 흐른다는 건 무슨 뜻이야? 매일매일 아이가 물어대는 그 질문들에 대한 모범 답안을 나는 이제야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공책을 하나 마련합니다. 페이지마다 제일 위에는 내 아이의 "왜?"를 써봅니다.

"우주는 어떻게 생겼고 나는 또 왜 지구에 있게 된 걸까?"
아이의 질문 아래 내 답변을 적어봅니다.
"아주 아주 오래 전, 빅뱅이라고 부르는 우주의 시작이 있었어. 약 120억년 전 원자로 이루어진 최초의 입자들이 나타났어. 그 입자들이 서로서로 결합하여 별이 되고 행성이 되고 또 그다음 지구 위에 생명체가 만들어졌지. 네 몸은 우주 조각들로 이루어진 거야. 그러니까 휘영아, 너는 바로 별들의 자식이란다."

자신의 아이가 이제 갓 태어난 갓난 아기든, 초등학생이든, 혹은 중고등학생이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이라면 꼭 한 번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어떤 육아 도서, 어떤 교육 도서보다도 가장 훌륭한 자녀 교육의 길잡이가 될 것임을 정말 확신하거든요.

아쉬운 점 한 가지는, 저자가 프랑스인이고 따라서 아이에게 주입하는 세계관과 역사관이 프랑스인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새로운 <네모의 책>을 써주고 싶습니다. 한국인의 역사관, 한국인의 세계관을 덧입힌, 한국의 아이에게 주는 책을 말이죠. 이 책은 엄마인 제게 매우 훌륭한 모방 텍스트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는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보니 아쉽게도 절판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독자 리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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