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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남편이 회사에 남아도는 의자가 있다면서 가져와도 되느냐고 물었다. 지금 쓰는 식탁의자가 낡아서 버려야 하나 고민하던 차라 무조건 실어오라고 했다. 색이나 디자인이 식탁과 맞지 않더라도 어차피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엔 망가질 것 같아 대충 쓰다가 버릴 생각이었다.
토요일에 일 때문에 늦게 퇴근한 남편이 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8시 반이었다. 새 의자가 온다는 것 때문에 아이들도 다들 설레는 맘으로 아빠를 기다렸다. 그러나 남편이 가져온 의자를 본 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간부회의실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팔걸이 의자를 세 개나 가져온 것이다. 의자 바닥과 등받이부분이 검은 가죽으로 돼 있고 넓이는 어찌나 넓던지 아이가 둘이나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의자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21평 좁은 집은 그야말로 꽉 찬 것이다.
팔걸이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면서 그나마 이것도 세 개밖에 남지 않아 간신히 가져온 거라 했다. 높이도 만만치 않아서 식탁안으로 들어가지도 않는 의자. 한숨부터 나왔다. 남편도 집에 들여놓고 보니 회사에서와는 달리 집에 비해 의자가 크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고생해서 가져온 거라 다시 갖다 놓겠다는 말은 안한다. 대책이 없어서 일단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새 의자에 처음 앉았다. 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식탁의 각 한면을 꽉 채운 의자를 보니 밥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았다. 버리려면 돈 꽤나 들겠다 싶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까. 청소하며, 지나다니며, 의자를 볼 때마다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남편은 무슨 생각으로 저걸 가져왔는지,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난감했다.
잠시 집에 들렀던 동생이 보더니 까무라치기 일보 직전이다. 좁은 집구석이 터지겠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안 그래도 세 아이들의 책이며 장난감으로 이미 집은 포화 상태가 아니던가? 의자 두 개는 쓰지도 못하고 한쪽에 나란히 세워두었다.
그날 밤 남편에게 "우리 집 주인이 바뀌었어요"했더니 깜짝 놀란다.
"언제?"
"그저께까지는 우리가 주인이었는데 이젠 의자가 주인이야" 남편이 피식 웃는다.
생각해보니 사실 그전부터 집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었다. 거실의 가장 좋은 자리엔 텔레비젼이 떡 하니 앉아 있고 부엌엔 대형 냉장고가 버티고 있다. 안방이라고 다른가? 장롱과 침대가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은 방엔 책상과 컴퓨터가 있고. 사람들은 남은 자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모든 것이 사는 데는 유용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인데 언제부터인가 제자리를 슬금슬금 다른 것에 내주고 있지 않았나 싶다.
문득 이솝우화가 떠오른다.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주인과 낙타. 춥다고 뒷다리 하나만 넣어도 되냐고 애걸하던 낙타에게 순순히 자리를 내주었던 주인. 시간이 지나면서 뒷다리 두 개, 또 앞다리를 들여놓던 낙타는 아예 텐트안으로 들어왔고, 좁은 텐트를 차지하고 만다. 주인은 결국 밖에서 추운 밤을 보낸다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우린 쫓겨나고도 깨닫지 못하는 바보가 아닌지. 앞으로 집의 중요하고 넓은 자리를 차지할 물건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소파니 피아노니 망가질까 흠집이 날까 두려워, 쓰는 횟수에 비해 고이 고이 모셔두는 상전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당장 내다 버릴 수는 없지만 한번쯤은 누가 진짜 주인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렇게 말하고서도 당분간은 의자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남편은 가져온 수고가 아까워서이고 난 노란딱지 사는 돈이 아까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행랑어멈이 마님 바라보듯 의자를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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