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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지역을 방문하는 이들은 굳이 아랍어 못한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분위기가 걸프지역의 일반적인 분위기이다. 어디를 가나 동남아시아출신 직원들이 가득하다. 물론 공용어는 아랍어가 아니라 영어이다. 상점, 식당, 택시할 것 없이 외국인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조차도 영어를 사용한다.

두바이 국제공항 청사를 둘러보았을 때도 아랍어 광고판보다 영어 광고판이 더 눈에 쉽게 들어왔다. 현지 신문을 보아도 꼭 인도나 동남아시아 섹션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다. 현지 아랍인이 오히려 외국인처럼 보인다.

UAE, 적지 않은 한인들이 축구 강국으로서 UAE를 떠올릴 것이다. 비록 이번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축구 강국임에 분명하다. GNP가 2만 달러에 육박하는 아랍에미레이트 연합국은 세계 최고의 부국 가운데 하나이다. 흔히들 UAE를 왕정 체제로 이해하지만 대통령제 국가이다. UAE는 중동의 이슬람국가 가운데 연방제를 채택한 유일한 나라다.

아라비아 반도 동쪽 페르시아만 연안의 토후(에미르)가 다스리는 영지(에미리트) 7개가 모여 연합국가를 이뤘다. 권력구조는 대통령 중심제지만 토후도 권력을 일부 나눠갖고 있다. 현 대통령은 셰이크 자예드 대통령, 1971년 토후들의 선출로 대통령이 된 이래 30년간 여섯 번을 연임했다. 사실상의 군주나 다름없다.

UAE는 물론 이슬람이 국교인 이슬람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엄한 맛은 찾아보기 힘들다. 흰색 통옷을 즐겨 입는 현지인 남성들의 복장이나 검은 색 아바야로 온몸을 감고 있는 현지인 여성들을 볼 때를 제외한다면...

잘 닦인 고속도로와 고가도로, 현대화된 고층빌딩 숲과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다양한 레저 시설 등은 이곳이 또 다른 세계임을 알게 한다. 거리에서도 현지인은커녕 아랍인들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이슬람국가가 아닌 그냥 하나의 '잘사는 부자들의 나라'로 다가온다.

스스로 잘산다고 생각하는 까닭인지 현지인들의 텃세도 만만치 않다. 동남아시아계 등 제3국인을 마치 머슴 하녀 취급한다고들 푸념이 많다. 본토인과 제3국인간에 마찰이 생겨도 의당 책임은 제3국인에게 돌려진다는 것이 현지에서 듣는 이야기이다. 현지인의 인종차별이 만만치 않다는 것. 그렇지만 자국민 안에서의 융합은 좋은 상태이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는 있지만 사회활동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 여성 택시운전사도 존재하고 여성들의 사회적 대접도 괜찮은 나라이다. 여성 우대를 즐기려면 어디를 갈 때나 여성과 동행하면 큰 혜택을 누릴 것이다. 아무리 남자줄이 길어도 여자는 맨 앞줄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공서나 병원이나 어디서든 '레이디 퍼스트'이다. 두바이 쇼핑 축제를 비롯하여 각종 이벤트가 줄을 잇는다. 여성 전용 백화점, 여성 전용 은행... 여성들에 대한 배려가 끝이 없다. 이것이 여성 보호차원이든 여성은 약한 존재라는 남성 우월주의에 근거한 것이든 여성들의 지위는 인근 걸프 아랍국가에 비하여 월등히 나아보인다. 화려한 불빛이 저녁을 휘감고 있는 두바이의 또 다른 애칭은 중동의 파리이다.

걸프만에 닿아 있는 두바이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강이 있다. 크릭 강. 두바이시의 동서를 연결한다. 그 강에는 영업용 배들이 수시로 동서를 잇고 있다. 걸프만에 가까운 크릭강변에는 정박중인 낡은 목선들에서는 연신 화물을 실어올리고 있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들과 예멘 등에서 온 일손들의 바쁜 손놀림이 느껴진다. 그 뒤로 현대식 건물들의 모습이 어우러진다.

두바이 상공회의소 건물은 바람에 부푼 상선의 돛 모양을 하고 있다. 두바이는 옛날부터 '아라비아 상인'이라 불리던 '바닷길 상인'과 사막 대상(隊商)의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다. 지리적인 조건으로 일찍부터 아라비아 반도 내륙과 이란 이라크 등에 대한 중개무역지로서의 성장하였다. 그래서 흔히들 두바이를 중동의 홍콩으로 부른다.

현지인들은 생활고, 보릿고개가 뭔지를 모른다. 세금이 일절 없는 데다 값싼 생활비, 많은 외국인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 보증금과 임대료 수입 등으로 넉넉한 삶을 살고 있다. 공무원 군인 경찰 공기업체 직원이 유난히 많고 처우도 좋다. 육군 대위의 연봉이 5만 달러(약 6500만 원) 수준이다. 그러고 보니 거리를 돌아다니는 경찰차량도 BMW나 벤츠 등 모두 고급 차종이었다.

이와 달리 두바이나 아부 다비 공항 곳곳에는 일자리를 찾아 이곳을 찾은 여성이나 남성 노동자 그룹을 만나기 쉽다.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 다수도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각종 육체 노동과 잡역부 운전사 등 기피 업종을 모두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의 외국인들에게 맡겼다. 심지어 말단 경찰직원은 예멘 등지에서 온 아랍인들이 맡기도 한다.

2001년 현재 UAE의 400만 명에 이르는 노동력 중 85%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이다. 사기업 부문이 외국인들의 독무대이고 공공부문에서도 60%가 외국인 노동자이다. 이러한 수치는 경제 활동을 원유와 가스부분에 의지하고 있는 걸프지역 국가들 중에서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인도, 파키스탄과 기타 동남아 사람들이다. UAE는 영국에서 독립하기 전인 1968년, 노동력의 62%가 자국민이었는데 지금은 7.5%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져 그야말로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상태다.

유목민적 분위기가 변하여 현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면서 UAE 국민은 이른바 3D 업종 등 손에 기름 묻히고 물 묻히는 천한 직업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런 연유로 외국인 인력들이 필요했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더 많은 인원들을 필요로 했다. 국가의 주요 활동이 이제는 외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뤄져야만 할 지경이 되었다.

인구비율의 불균형을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UAE 정부는 최근 불법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를 강제 출국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국가의 필요는 그리 간단히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외국인력이 차지하고 있는 분야의 대부분은 저임금 현지인 기피 업종이라는 점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는 하지만 현지 아랍인들 중에는 무료함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풍요롭지만 뭔가 활기차게 몰두할 '꺼리'를 원하는 젊은이들은 외국행이다. 해양공원을 만들고 원더랜드 등 위락시설을 만들고 낙타경주다 투우다 볼거리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 음악 출판 등이 잘 발달되지 않아 자체적인 대중문화의 활동이 미약하기만 하다.

'꺼리'가 없어서일까? 현지인들은 자동차 경주를 하듯 폭주를 일삼는 이들이 많다. 속도 내기가 유일한 레저인 양 거리를 달려간다. 저녁이 되면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은 더욱 밝아온다. 별 4개 이상의 고급 호텔들 대다수는 나이트 클럽을 운영한다. 밤마다 요란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비벼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댄서들이나 연주자들은 동남아시아 출신이나 이라크 레바논 이집트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무슬림들에게 음주가 금기사항이지만 나이트 클럽을 찾는 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UAE의 이슬람 문화도 다른 이슬람권 국가에 비해 융통성이 많다. 인구의 80% 정도가 무슬림 수니파이고 시아파가 약 20%지만 이슬람 내 종파간에 갈등은 없다. 외국인 체류자가 많은 것을 감안한 것인지 외국인 밀집지역에는 힌두교 사원도 있고 종교 부지 안에 교회와 성당도 있다.

UAE는 앞서 언급한 외국인력의 급팽창으로 인한 아랍화에 대한 고민이 가장 첨예한 이슈로 다가와 있다. 국제결혼의 증가와 사회의 비아랍화 분위기는 소수 현지 토박이들에게 긴장감을 안겨주고 있다. 현지인들조차 아랍어 쓸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아랍에미레이트를 유지하기 위한 UAE 정부의 노력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인근 걸프 연안국들에게 하나의 지침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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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문은, 아랍어를 전공하였다. 아랍 이슬람 지역의 과거와 현재의 문명과 일상, 이슬람 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그 것을 배우고 나누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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