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보은 일대는 삼국시대의 각축장으로, 특히 신라와 백제간의 싸움이 그치지 않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헌덕왕 14년(882)에 있었던 '김헌창의 난' 당시 반란군은 왕의 진압군이 출동하자 곳곳에 휘하 병력을 배치하고 항전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병력을 배치시켰던 곳이 바로 이곳 삼년산성이며, 고려 태조 왕건이 태조 1년(918) 고려 영토를 넘어 진격한 후백제 견훤군을 치려다가 실패하고 청주까지 물러나게 되는 계기가 된 곳이, 바로 이곳 삼년산성이다.
실제로 삼년산성에 올라 성벽을 따라 산성을 한 바퀴 밟아보면 알겠지만, 삼년산성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 중 으뜸에 속할 것만 같다.
산성이 있는 지대가 주변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아니지만 분지의 한쪽에 자리잡았기 때문인지 주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성벽 자체가 두텁고 견고하게 서 있다.
또한 당시 성 안에는 다섯 개의 우물과 아미지(蛾眉池)라 불리는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니, 유사시에도 심각한 물 부족을 겪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천천히 산성에 올라보자. 보은상고를 끼고 마을길을 오르면 작은 마을을 지나 바로 삼년산성의 서문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복원된 부분이 많아서인지 세월의 이끼가 덜 탄 듯하다. 현재 문루는 복원되지 않았는데, 문이 있던 자리를 유심히 살펴보면 크고 작은 돌덩이들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1980년 7월에 근 4시간 동안 337mm의 폭우가 내렸을 때 발견된 기둥 받침돌은 여러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보통 성의 큰 문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열도록 만들어진 것이 많다. 그러나 이곳 서문 자리에서 발견된 기둥 받침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라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열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지난 번의 운현궁처럼 누구를 감금할 필요로 인해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삼년산성이 군사요충지에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 상상을 해보자. 아마도 신속한 성 밖 돌격을 감행하는 데 그러한 형태의 문이 더 유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저 상상을 해볼 따름이다.
문이 없는 서문을 들어서면 이내 버드나무가 보이는 늪지를 맞닥뜨리게 된다. 늪 주변의 암벽엔 앞서 말한 '아미지'라는 글자가 음각 되어 있어 이곳이 보통 늪지는 아님을 말해준다.
이제 슬슬 성벽에 올라 걸어보자. 먼저 성벽에 올라 주위 경관을 조망한 후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이내 곳곳이 무너져 내린 부분을 만나게 된다.
특히 무너져 너덜을 이룬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점판암 계의 넓적한 판돌을 한 층은 가로 방향으로, 한 층은 세로 방향으로 쌓음으로써 성벽의 견고함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동쪽과 서쪽의 성벽은 남쪽이나 북쪽 성벽과 달리 바깥 부분은 돌을 쌓고 안 쪽에는 흙을 촘촘히 채워넣었다.
동문을 향해 계속 걷다 보면 성 안의 물을 밖으로 보내는 데 이용되던 수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그저 걷기만 해선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성 안쪽은 이미 무너져 버린 지 오래고, 수구는 성 바깥쪽에 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답사 전에 수구가 어디쯤 있다는 것을 미리 조사해 가면 편할 것이다. 아무튼 수구는 성벽이 지표면과 만나는 곳에서 약 1m 높이에 성벽에서 약간 돌출된 채로 남아 있으며, 그 동쪽에서는 가로 45cm, 세로 65cm의 크기의 오각형 수문도 볼 수 있다.
나아가 북쪽의 성벽에서는 무너져내려 너덜을 이룬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특히 굴곡이 심한 데다 걷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곳이 많아 답사하는데 자칫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곳에선 중요한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곡성의 흔적이 바로 그것이다. 곡성의 위치를 곰곰이 따져 보면 곡성이 있는 부분은 능선과 연결이 되어 있어 적의 접근이 다른 곳보다 용이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즉 곡성이라는 것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을 공격하기 위해 반달형으로 내쌓은 것으로, 수원 화성의 옹성이나 치가 갖는 역할과 비슷한 구실을 한다.
삼년산성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자비왕 13년인 470년에 처음 쌓았는데, 특히 이 성을 다 쌓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삼년산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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