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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9일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연습구장에서 축구시합을 하던 정몽준 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월드컵 당' 대선후보 정몽준 씨.
사람들은 그를 부를 때 이름 뒤에 어떤 직책을 붙여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몽준(이하 존칭 생략)은 여러 가지 화려한 직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경영인(현대중공업 사장, 회장, 고문)
정치인(초선 당선 이후 4선 국회의원)
체육인(대한축구협회 회장, 국제축구연맹 부회장)
정몽준의 나이 이제 50세. 대한민국 최고의 행운아이자 성공남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정몽준은 29세에 미국 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눈부신 속도로 '행운'과 '성공'을 거머쥐기 시작했다.
우선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에 취임했으며, 37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43세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더불어 국제 체육계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에 피선됐으며, 45세에 모두가 불가능하리라고 예상했던 월드컵 유치를 성사시켰다.
남들은 평생 하나도 오르기 어려운 거봉을, 그것도 가장 화려한 봉우리만 골라서 모두 정복한 정몽준은 이제 두 개의 정상 정복만을 남겨 두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체육인으로서 'FIFA 회장'이 바로 그것인데, 공교롭게도 양대 선거 모두 내년에 있다. 한마디로 2002년은 정몽준의 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듯싶다.
지난 12월 1일 부산에서 2002 한일 월드컵 조 추첨식이 열렸다. 전 국민과 전 세계 축구팬의 시선이 한국으로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 그날 이후 모든 방송과 신문은 일주일 내내 조 추첨 결과를 평가하고 대진운을 전망하는 데 많은 화면과 지면을 할애했다.
본격적인 '월드컵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더불어 '월드컵 당' 정몽준 총재(?)의 주가도 솟구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날 조 추첨식이 열린 부산 전시컨벤션센터에 두루마기 한복 차림으로 나타난 정몽준은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우리가 '월드컵 정치학'이라는 분석틀을 가지고 정몽준을 해부해보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거니와, <월간 말>은 이미 지난 6월호에서 커버스토리로 같은 주제의 기사를 다룬 바 있다. "월드컵 성공 '센터링' 대권 '슛' 노린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은 전문(前文)으로 말문을 열었다.
"신당창당 논란, FIFA 회장 도전 시사, 월드컵 개막식에 김정일·장쩌민·아키히토 초청 계획…. 월드컵 개최 1년을 앞둔 정몽준 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까지 현실 정치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수비'에 치중하던 그가 서서히 '공격'으로 선회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드컵을 통해서 본 정몽준의 대권전략'을 '4강1약'으로 분석했다."
<월간 말>이 분석한 정몽준의 '4강1약'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4강: (1)현대 가문이 정치권에 파견한 대표주자 (2)'현대왕국' 울산의 맹주 (3)FIFA의 차세대 주자 (4)동아시아 국제정치학의 조율사
1약: 재벌가 일원으로서의 태생적 한계
정몽준을 월드컵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축구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용어를 총동원해 정몽준의 대권 가능성을 분석해 보는 것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을 듯하다. <월간 말>의 '4강1약' 분석을 기초자료로 삼되, 그것을 축구 용어로 풀어서 설명해 보자.
(1) '명문구단'이 키워낸 '스타 플레이어'
'현대 가문이 정치권에 파견한 대표주자'를 축구 용어로 풀어본 것이 바로 '명문구단이 키워낸 스타 플레이어'다.
현대가 '명문구단'이라는 것은 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세계 언론인 신디케이트가 선정한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기업 분야에서 현대가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뽑힌 것이 그 방증이다. 한마디로 현대는 한국 근대화와 재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는 한국 기업 사상 최초로 스포츠 외교와 대권에 도전한 기업이기도 하다.
이런 현대가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것이 바로 정몽준이다. 그는 31세에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현대의 주력기업인 현대중공업(현대의 4대 주력 부문은 건설, 자동차, 중공업, 전자)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6남 중 5남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정몽준이 '명문구단' 현대의 카리스마적 '감독'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정몽준 스스로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능력과 재주가 없는데도 과연 '감독'의 총애와 낙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실제로 정몽준은 '실력파 선수'로 대접받을 만한 충분한 경력을 쌓았다. 우선 여섯 명의 아들 중 유일하게 국내 일류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유학을 떠나 경영학 석사와 국제정치학 박사 등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은 '유학파 선수'이다. 석사와 박사 논문을 묶은 <기업경영이념>과 <일본의 정부와 기업 관계>라는 전문 저술도 가지고 있다.
| | ▲정몽준은 아버지 정주영이 '큰 그림'을 그리며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1980년대 초반 영국 수상 대처와 함께 한 정주영과 정몽준 부자. | 정몽준 '선수'는 현대 '구단'이 스포츠 외교와 대권 도전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실천에 옮길 때마다 정주영 '감독'의 '트레이너'로서 그림자 역할까지 수행했다.
실제로 정몽준은 1980년 바덴바덴의 '쎄울 꼬레아 신화' 당시에는 정주영 서울올림픽유치조직위원장의 통역 비서로서(이 부분은 정주영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1992년 국민당 창당과 대권 도전 당시에는 정책위부의장과 부산·경남선거대책본부장으로서 활약했다. 1996년에 발간된 정주영 화전(畵傳) <세기의 가교>에도 정몽준이 아버지를 밀착 수행하는 모습이 곳곳에 나온다.
이러한 수행 장면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할 때도, 금강산 관광과 남북교류를 이뤄낼 때도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정몽준은 여론조사 때마다 '남북문제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정치인'으로 선정되곤 했다.
'스타 플레이어'는 '부상'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몽준이 정몽구(MK)와 정몽헌(MH)이 주연으로 출연한 일명 '왕자의 난'에 연루되지 않은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몽준은 재벌 경영의 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여론의 지탄을 받은 바 있는 '왕자의 난' 당시 현대중공업 고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던 덕분에 도덕적 상처를 덜 입었다.
(2) '철벽 수비력'과 '비교우위론'의 '양 날개 작전'
| |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정몽준의 대권전략은 '양 날개 작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사저널> 10월 29일자 기사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시사적이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 불신이 커질수록 정 의원의 주가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를 두고 '정치인인지 체육인인지 경영인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는 듯한 그의 행보가 오히려 차기 대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지난 9월 조사한 차기 주자군 '이미지 평가' 결과에서 그는 가장 거부감이 적은 정치인으로 꼽혔다."
실제로 정몽준이 정쟁으로 날밤을 지새우며 불신을 자초하는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일종의 '비교우위 전술'로 명명할 수 있거니와, 이러한 전술의 구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정몽준은 '철옹성 같은 안방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어도 '수비력'이 약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처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양분한 지배구조 속에서 '무소속'이라는 결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몽준이 끊임없이 대권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울산'이라는 확고한 지역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정몽준은 '울산 대통령'으로 불리거니와, 울산은 한마디로 '현대 왕국'이다. 정몽준의 선거구인 울산 동구의 경우, 인구 20만 명 중 4분의 1인 5만 명이 현대 계열사 직원이나 가족이라고 한다.
정몽준이 울산에 쏟는 정성도 대단하다. 현재 울산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작년에는 울산과학대를 설립했으며, 총선에서 당선된 1988년 이후 신설한 초·충·고 학교가 10개나 된다고 한다.
둘째, 정몽준은 '대선 월드컵'에서 '환상의 조'에 편성됐다.
이 말은 이중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데, '무소속'에 불과한 정몽준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주범(?)은 다름 아닌 현실 정치 자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이 주도하고 있는 정당 정치가 그만큼 '개판'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정몽준은 그들과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이번에 부산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 조 추첨식 결과 화제가 됐던 '죽음의 조'와 '환상의 조'는 한국 정치에 시사적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나이지리아, 스웨덴이 소속된 F조를 '죽음의 조'로, 반면에 일본,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로 편성된 H조는 '환상의 조'로 분류했다.
약체 팀과 만난 일본의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진 것처럼, 정당 정치가 자해정치(?)를 일삼으며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정몽준의 존재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정당에 기반한 현실 정치의 취약성이야말로 정몽준의 '비교우위 전술'이 국민들에게 먹혀들 수밖에 없는 토양인 셈이다.
실제로 정당에 몸담고 있는 대선주자들이 '민생'에 소홀한 채 '대권'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고 있는 가운데, 정몽준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제회복, 남북문제, 지역갈등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3) '리베로'의 '천우신조론' 혹은 '블레터 현상'
운동경기에서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선수를 '리베로'라고 부르거니와, 현재 정몽준이 구사하고 있는 정치 스타일은 '리베로'에 비유할 수 있다.
'리베로' 정몽준은 국제 체육계의 저명인사라는 장점을 활용해 '외곽 때리기 전략'과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잔디구장 위에 축구공이 놓여 있는 칼라사진과 '다 함께 축구를 즐기자'는 구호가 적혀 있는 그의 명함이 상징하듯이 그는 '스포츠 외교'를 통해 착실하게 점수를 따고 있다.
우선 정몽준은 1994년 불가능할 것 같던 FIFA 부회장에 당선됐다. 그리고 불과 2년만에 일본의 단독유치에 제동을 걸고 공동개최를 성사시킴으로써 국민들이 정몽준이라는 인물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거기에다 동양인 최초로 강력한 FIFA 차기 회장 후보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리베로'라는 자유로운 입지와 '외곽 때리기'를 통한 착실한 점수 따기는 정몽준에게 전술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는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대권도전 방식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민주당에 입당해 경선에 참여하는 것과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최근 DJ의 '문호개방론'과 YS와 JP의 '영남후보론'과 맞아떨어지면서 서서히 바람을 타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천우신조론(天佑神助論)'이라고 할 수 있거니와, 실제로 이 문제는 어떤 세력과 연대해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는 정몽준의 대권가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개인적 역량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무소속은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축구가 화려한 '개인 플레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팀웍'이 받쳐줘야 가능한 경기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문호개방론'이나 '영남후보론'과 관련해 1998년 FIFA 회장 선거 당시 위력을 발휘했던 '아벨란제-블레터 연대전술'은 정몽준에게 연구대상이 될 듯싶다. 당시 'FIFA의 3김'에 비유할 수 있는 '거물' 아벨란제는 방송중계권 등 이권을 챙기기 위해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젊은 후보' 블레터 사무총장을 밀었다. 자신이 다루기 힘든 '또 다른 거물' 요한슨 유럽축구연맹 회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정치의 아벨란제'라고 할 수 있는 '거물 정치인' 3김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다루기 힘든 '또 다른 거물 정치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견제하기 위해 '제3의 젊은 후보'를 밀까. 그리고 정몽준은 그 '제3의 젊은 후보'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4) 중원의 안정과 평화를 조율하는 '미드필더'
월드컵은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축제의 자리다. 특히 부시정권 출범 이후 전 세계의 안정과 평화, 그 중에서도 남북한, 중국, 일본이 위치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2002 한일 월드컵은 동아시아의 살얼음판 정국을 해빙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정몽준은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에 전 세계 정치 지도자는 물론이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장쩌민 중국 주석, 아키히토 일본 왕 등 동아시아의 지도자들을 초청할 계획이다. 만약 이러한 '세기적 이벤트'가 성공한다면, 정몽준은 어느 나라 국가 원수도 하기 어려운 일을 성사시키는 셈이 된다.
더욱이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그것도 중국 경기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이 확정되면서 '추미'(중국의 열성 축구팬)들이 한국으로 대거 몰려올 것이 확실하다. 추미들은 "육로를 개방하면 자전거를 타고서라도 한국에 오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선 중국 경기 중 일부가 북한에서 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서로운 징후들은 월드컵이 꽁꽁 얼어붙은 아시아와 남북의 빗장을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정몽준이 동아시아 평화를 조율하는 '미드필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축구에서 '미드필더'의 역할은 막중하다. 1998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지단'이라는 뛰어난 미드필드가 있었기 때문이고, 2002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이 다크호스로 주목받는 것은 '피구'라는 탁월한 미드필더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축구에서 한국을 앞지를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나카타'라는 천재적 미드필더가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만약 정몽준이 중원(동아시아와 남북)의 안정과 평화를 조율하는 '미드필더'가 된다면, '2002 대선 월드컵'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5) '스타 플레이어'의 세 가지 '아킬레스건'
축구 경기에서 '스타 플레이어'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는 법이거니와, 정몽준에게도 약점은 있다. 재벌가 아들이라는 태생적 한계, 검증되지 않은 리더십, 현실적 정치세력화 부족, 적극성 부족 등이 바로 정몽준 '선수'가 넘어야 할 과제들이다.
첫째,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태생적 한계이다.
지난 12월 4일 서울대 경영대 특강에서 부친에 대한 변함없는 존경과 충성을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몽준은 재벌 오너의 일원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과 유권자라는 '심판'들이 과연 재벌가 아들이 '금력'에다 '권력'까지 거머쥐는 상황을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 약점(?)은 앞에서 열거한 장점의 토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정몽준은 이제 슬로건을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아버지를 넘어서'로 바꾸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실제로 '현대 스타일' 혹은 '정주영 스타일'은 '폐허 위의 건설'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경영보다 통치를, 다수의 조화보다 1인 지배를,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재벌을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했다 실패한 아버지의 '징크스'를 그 아들이 과연 깰 수 있을 것인지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둘째, 검증되지 않은 리더십과 현실적 세 부족이다.
정몽준이 자력(自力)으로 대권도전이라는 '본선'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축구와 대선은 '팀웤'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3김이 정몽준을 '제3의 후보'로 지원하는 상황, 즉 '천우신조론'이나 '블레터 현상'이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자력에 의한 승리로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평소 '비교우위론'을 통해 쌓아온 '깨끗하고 젊은 이미지'와도 상호 충돌한다. 그것이 정몽준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적극성이 부족하고 투지와 투혼이 약하다.
정몽준은 정치부 기자들로부터 월드컵 얘기를 할 땐 '달변'이지만 정치 얘기를 할 땐 '눌변'이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두 번째 약점과 무관하지 않을 터인데, 그가 '직설법'보다 '은유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몽준이 대권도전과 관련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즐겨 인용하는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금언에 모든 이유가 담겨 있거니와,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직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공직이나 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피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평상시에 공직이나 죽음을 추구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것이다."
대다수 기자들은 이 말을 마치 고차원의 '정치적 수사'라도 되는 양 평가하는 모양인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도리어 그 '우회적 수사'의 행간에서 정몽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우유부단함'과 '투지와 투혼의 부족'을 읽는다.
동시에 정몽준의 '뜨뜻미지근한' 어법'에서 한국 축구의 가장 큰 고질병인 '문전처리 미숙'과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말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았던 때문일까. 정몽준은 4선 의원이라는 정치적 경륜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의 낡은 노선이나 방향을 바꾸기 위해, 혹은 절대 권력의 잘못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결단의 모습을 국민에게 한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양김이 비록 지금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 국민의 뜨거운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그것을 토대로 대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 상황의 중대한 고비 때마다 투지와 투혼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 |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그러나 정치인 정몽준에게서 그런 투지와 투혼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시대적 명분이 그리 크지 않았던 아버지 정주영의 정치적 도박(?)에 동참한 것이 그의 투지와 투혼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던 것 같다.
정치인에게 투지와 투혼이 없다면, 국민들은 그 정치인이 언제라도 기득권을 옹호하려는 수구세력의 공격에 무력하게 넘어지거나 비대언론의 주제넘은 훈수에 정신없이 휘둘리지 않을까 염려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축구팬들이 변죽만 실컷 울리고 정작 골은 넣지 못하는 플레이에 결코 박수를 보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스타 플레이어'에게서 '스트리트 파이터'의 '투지'와 '투혼'을 보고 싶어 한다.
정 자신이 없다면, 정치적 생명을 모두 내건 채 대포알 같은 '슛'을 쏘겠다는 일념으로 질주하고 있는 다른 선수에게 '센터링'을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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