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계룡산 동학사 입구 무풍교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들 중에는 구면인 듯 악수를 하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명함을 교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윽고 "반민족, 반통일 신문 조선일보를 보는 것은 수치입니다"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사람들은 서로의 등에 "조선일보 이제는 끊읍시다"라고 쓰인 부착물을 붙여주고 있었다.
집회참석자 중 최고령자인 이규희(63세) 애국지사 숭모회장이 큰 피켓 두 개를 말없이 들고 서자, 이어 사람들은 각자 피켓 하나씩을 들고 마치 제 위치가 있는 듯 자리에 섰다. 신문개혁 국민행동 대전충남본부(대표 김용우)가 주최하고 민주시민운동연합 대전충남지부(사무국장 우희창)와 인사모(인물과 사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전모임 (회장 현원형)가 주관한 '제2차 조선일보반대 대전시민가족 계룡산 결의대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2월 계룡산 자락의 바람은 매서운 날이 서있는 듯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10월의 1차대회 때보다는 참석자의 수가 훨씬 줄었다. 그러나 그렇게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눈에 띄었고, 어린 딸 둘을 데리고 온 아버지, 6살 난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도 눈에 띄었다.
참석자 중엔 간밤에 새벽까지 토론회를 하고 2시간 눈 붙이고 참석했다는 열혈 전교조 교사도 있었고, 비슷한 사정의 인사모 회원도 있었다. 간밤에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는 한 중년남자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아직도 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대학생으로는 조아목원(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목원대) 소속 회원이 5명 참석했다.
피켓 시위가 시작되고 약 20분쯤 후 집회참석자는 30명 가량으로 늘어나고 사회자인 민언련의 우희창 사무국장이 핸드마이크를 잡고 집회시작을 알린다. 충남대 차재영 교수의 간단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이성우 민주노동당 대전지구당위원장과 안티조선 집회의 단골 손님인 충북 옥천신문의 오한흥 편집국장의 격려사에 이어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의 결의문 낭독이 있었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11시 40분 경 참석자들은 조를 나누어, 1조는 남매탑 산행을 하고, 2조는 주변 식당가와 등산객들을 상대로 계속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등산객은 상당히 많았다. 한꺼번에 이삼십명 단위로 계속 몰려오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구호를 외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어색한 듯 했던 참석자들이 시간이 지나자 점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인사모 소속 젊은 여성은 아이의 유모차를 끌면서 "우리 아이들이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조선일보를 끊읍시다"를 연신 외치고 있었고, 민족문제연구소 이전오 회원의 "반민족 반통일 신문 조선일보를 당장 끊읍시다"라는 외침은 계룡산 자락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날의 MVP는 단연 오한흥 국장이었다. 그는 등산객이 필히 거쳐야 할 요지(?)인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는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의 한 쪽을 등산객들에게 펼쳐 보이며 "제호 위에 일장기,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입니까, 여러분?"을 연신 외치고 있었다. 이어 "조선일보 보는 사람들하고는 사돈 맺지 맙시다"라는 말로 등산객들의 웃음을 자아내었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다 전단지를 받아본 한 중년 남자는 "나는 집에서 조선일보를 보는디, 시민단체에서 끊으라니께 끊어야겠구만" 하며 멋적은 듯 내려갔다. 그리고 부근에서 장사를 하는 한 아주머니는 "조선일보가 저런 신문인줄 몰랐다"며 "그럼 당연히 끊어야지유"하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였다.
한시간 정도가 지난 12시 30분경 누군가의 "먹고 합시다"라는 말에 참석자들은 현수막을 걷고 집회용품을 챙겨 "조선일보를 안 봐서 얼굴이 뽀얗다"는 한 여주인의 인근 식당으로 들어갔다.
덧붙이는 글 | 제2차 조선일보반대 대전시민가족 계룡산 결의대회 결의문
오늘 찬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에 우리 대전 시민은 여기 계룡산 자락에 모였다. 우리는 왜 이곳에 모였는가? 그것은 조선일보의 죄악과 사회적 해악을 우리 이웃에 널리 알리고 조선일보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스스로 민족지를 자처하며 1등신문이라는 허황된 말로 국민을 속여왔으며, 할말 못할 말을 아무런 책임의식도 없이 토해 내면서 '할말은 하는 신문'이라 혹세무민하여왔다.
조선일보는 스스로 '1등신문'이라 주장한다. 그리하여 조선일보에 묻는다. 무엇에 1등하는 신문이며, 그 1등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 얻은 1등인가? 힘센 자에 빌붙어 없는 자 짓밟기와 은폐왜곡에 1등은 아닌가? 그대들은 집에서 자식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등만 해 오라"고 가르치는가?
그리고 조선일보는 스스로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 주장한다. 조선일보가 하고자 하는 '할말'이란 과연 무엇인가? 천문학적 탈세를 하고도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 하는 것도 '할말'인가?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임은 벗어 놓은 채 "아님 말고" 식으로 검증되지 않은 말을 있는대로 내뱉는 신문이 '할말은 하는 신문'인가?
또 조선일보는 스스로 민족지라 칭한다. 민족지라면 과거 일제치하에 어떤 민족적 행위를 했는지 떳떳하게 자랑해 보라. 조선일보가 우리 민족을 일본 왕의 자식이라 비하하고,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정신대로 내 몬, 지울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이 있다. 그 반민족 행위의 예를 들자면 오늘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과거를 불문에 부친다 할 때, 지금에 와선 무엇으로 민족지라 주장하는지 그 근거를 밝혀 보라. 남북간, 북미간의 대결을 드러내놓고 부추기며 통일을 방해하고, 한반도에 전쟁의 광기를 주입하려 혈안이 되어있는 조선일보가 과연 민족지인가, 반민족지인가? 조선일보여, 제정신이 있으면 대답해 보라.
그동안 조선일보는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 친일부역을 하고도 50여년 단죄되지 않고 오랫동안 많이도 해 먹었다. 그리고 독재와의 야합의 대가로 어둠 속에서 한부 한부 늘려 왔다. 그러나 세상이 마냥 허수룩하지 만은 않다. 오랜 잠에서 민중이 깨어난다. 이제는 한부 한부 되돌려 줄 때가 온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막 깨어나는 민중의 분노를 모아 조선일보에게 충고한다. 과거의 숱한 죄악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민족 앞에 사죄하라. 더 이상 민중을 기만하지 말라. 더 이상 민족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지 말라. 이러한 충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민중의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하며, 우리는 오늘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우리는 평생 조선일보 구독을 거부한다.
2. 우리는 조선일보에 광고로 나오는 모든 물품에 대한 구매를 거부한다.
3. 우리는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더불어 살기 위하여 우리의 이웃에게 조선일보 절독권유를 생활화한다.
2001. 12. 9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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