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 조국은 식민지
일찍이 이방인이 지배하던 땅에 태어나
지금은 옛 전우가 다스리는 나라
나는 주인이 아니다" (정희성 시인의 "불망기" 중에서)


내 조국은 식민지, 나는 주인이 아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나는 주인이 아니다... 이 땅에 주인으로 살기 위해 나는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지난 12월 21일 금요일, 나는 이 땅에서 주인행세 하는 미군의 오만한 제국, 용산기지 앞에 홀로 섰다. 이방인의 군대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늠름한 위용으로 주둔해 있다는 그 곳의 한가운데에. 들고 있던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제 고마 가라. 마이 죽쳤다 아이가!
You've stationed long enough. Don't overstay our welcome!"

날씨는 생각보다 매웠다. 그 곳에 서니 마음이 더 추워졌다. 바람이 찬 것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찬바람은 두터운 코트와 머플러를 종횡으로 뚫고 온 몸을 유린하고 지나갔다. 마치 저 이방인의 군대가 이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서 있으려니 목이 뻣뻣해 오고 땅의 한기가 그대로 머리 꼭대기로 전달되는 듯 했다. 아, 저곳이 우리의 수난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치욕의 현장인가. 식민지 땅의 상징인가. 나의 망막에 맺힌 그 현장이 찬바람과 함께 나의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낯선 얼굴색의 병사들이 끊임없이 꿈틀꿈틀 기어 들어가고 나왔다.

그 이방인의 병사 중 누군가는 지나가는 차 안에서 빈정거리는 듯 했고, 누군가는 엄지손가락을 추어주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것도 빈정거림의 다른 표현이겠지. 또 어떤 이들은 손을 흔들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이한 재밋거리였을까? 어떤 군인은 길 저쪽 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를 위하여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대여 나는 몸이 아직 굳지 않았네. 나는 식민지 땅에서 살고 있어도 주인이고 싶네. 그대의 나라에 돌아가면 얘기나 잘 해주게나, 이방인 친구.

한 중령 계급장을 단 나와 비슷한 얼굴의 군인이 다가와 피켓을 자세히 훑어보더니 내 얼굴도 훑고 지나갔다. 경멸 어린 눈초리로. 나도 그에게 똑같은 눈초리로 화답하였다. 한심한 백성 같으니, 서로를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우리는 마치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를 노려보며 마주 앉은 남과 북 같았으리라. 형제를 겨눈 총부리를 쥔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부끄러움은 내팽겨 버린 채 서로의 갈라진 조국에 대한 충성만 남은 남과 북 같았으리라. 그와 나의 조우는 그렇게 작은 분단이었다.

불현듯 찬바람이 지나가며 김남주는, 조태일은 왜 그리 일찍 갔느냐고 물었다. 다른 김남주와 조태일은 왜 여지껏 나타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땅의 목숨 붙은 시인은 왜 그저 강과 산에만 몰두하느냐고 물었다. 같은 길 가는 누구는 이 땅이 분명 식민지라하던데...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바람의 물음에 맞추어 나도 물었다. 미국과 그 앞잡이 세력의 안보주술에 걸린 반세기, 그 미망의 세월에서 우리 민족이 눈뜨는 날이 언제일까? 왜 눈을 뜨다 만 것일까? 외세의 간섭을 뿌리치고 우리의 두 다리로 일어서는 날이 언제일까? 새해엔 철이 들까?

그 날 삭풍이 부는 이방인의 주둔지 앞에서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속으로 외쳐댔다. "제발 좀 덜 잘 먹어도 좋으니, 자존심 좀 지키고 살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