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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창밖을 보았는데, 지나는 산들에 가득한 소나무들이 전에 없이 새롭게 다가왔다. 비록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전국 어딜 가든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소나무들.. 그리고 혹한의 겨울날이 닥쳐와도 푸르름을 결코 잃지 않는 나무.. 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 소나무가 바로 민중을 상징하는 나무구나!"
소나무는 북풍한설이 거세게 몰아칠 때도 변함없이 의연하게 푸르름을 유지하여 그 생명력을 쉽게 잃지 않는다. 바로 이 점에서 소나무가, 고난에 찬 겨레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 있는 민중들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늘 필명을 '소나무'나 '바위솔'로 즐겨 써왔다.
그런데 이번에 정동주님의 <소나무>라는 책을 읽고 이런 나의 생각이 결코 엉뚱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되었다. 그의 책 <소나무>에는 소나무에 얽힌 전설과 이전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소나무에 관한 정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가령, 소나무가 '솔'과 '나무'의 합성어로 솔은 上, 高, 元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나무중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책을 읽고 처음 안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솔'은 가장 우두머리인 '수리'에서 '술'로, 술에서 '솔'로 변해서 나온 말이라 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 사람은 소나무 사람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전통적으로 한국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의례적으로 생솔가지 금줄을 매달았으며,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즐겨 살았고, 죽어서 시신을 거두어 넣는 관도 소나무로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것이 한국인의 풍습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내 어릴적에 집에서 쓰던 쌀뒤주마저도 소나무로 만든 거였다. 과연 이럴진대 저자의 이런 주장이 빈말은 아닌 듯 싶다.
이 책은 아름다운 소나무 사진들이 많이 들어 있어, 시원하고 맑은 글과 함께 책의 운치를 더해준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놀라워했던 것은, 그 동안 소나무에 대해 너무 흔하게 여겨 별로 눈여겨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나무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주변의 아름다운 소나무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나무가 그냥 흔하디 흔한 나무들 중에 하나쯤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선구자'같은 노래나 안치환의 '솔아 솔아', 양희은의 '상록수'에 소나무가 등장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한국인의 정서 속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깊이 있게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저자처럼 소나무를 반드시 한국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한국인 고유의 전유물처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소나무는 한국에만 자라는 나무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며,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도 한국인들이 유달리 그렇다고 볼만한 근거가 현재는 그다지 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는 소나무가 일제시대에 쓰일 곳이 없는 나무로 취급되어 수난을 겪었음에도 한국 땅에 여전히 자라고 있다는 사실과, 이들 나무들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거침없이 일어서는 민중들처럼 투박하지만 늘 향기롭고 푸른 나무라는 것이 더 귀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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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 한국의 마음이야기
정동주 지음, 거름(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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