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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가에 가보면 느끼지만 요새 컴퓨터란 그리 희한한 물건이 아니다. 너도 만들고 나도 만들고 앞집의 초등학생은 자기가 직접 부품 사서 조립한다. 평범한 필수품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컴퓨터 업체의 유일한 무기는 값을 최대한 내리거나 아니면 같은 값에 강력한 CPU와 더 많은 메모리를 주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몇 년간 지속되다보니 전 세계의 PC회사들이 모두 속으로 골병을 앓고 있다.
천하장사라도 이렇게 이문이 박한 사업에서 버텨낼 재간은 없다. 컴팩과 HP가 합병을 하려는 것은 척박한 시장에서 경쟁자를 하나라도 줄이고 경비를 절감해 살아남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인 셈이다.
자고나면 신제품이 나오는 세상에 애플이 '무려' 3년만에 <아이맥> 신모델을 발표했다. 애플 역시 자체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다지 하이테크라고 할 만한 여지는 없어 보인다. 평면모니터는 삼성에서, 하드디스크는 도시바에서... 이렇게 부품을 싸게 조달받아 자신들의 운영체제를 설치하면 완제품이다. 애플이 정말 이렇게 했다면 이런 각박한 PC시장에서 불경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애플은 '와우!" 인자 혹은 '쿨!' 인자란 것으로 먹고 산다는 느낌이다.
넋이 나갈 정도로 혁신적이고 미끈한 디자인에 그에 걸맞는 성능과 사양을 채워넣은 신제품을 내놓는다. 1년쯤 지나 '와우!' 인자의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성능을 높이고 메모리를 추가로 더 얹어준다. 그것도 먹히지 않으면 본체의 색깔을 알록달록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특별한 정품을 생산한다. 이것마저 효과가 없어지면 그제서야 가격을 떨어뜨린다.
소비자들이 서서히 흥미를 잃어갈 때쯤 되면 더 화제를 일으킬 혁신적 신제품이 나온다고 몇 달 전부터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도대체 정체가 무언지 알고 싶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그제서야 제품을 공개한다. 이렇게 하면 언론 역시 독자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서라도 보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쯤 눈치를 챘겠지만 영낙없이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마케팅이다.
극장에 예고편을 내보낸다. 요샌 심지어 1년 전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티저에다 이런 저런 버전으로 몇 개씩 만든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영화가 개봉된다. 극장에서 몇 달간 흥행하면 본전은 회수한다. 이미 몇 달간 영화팬들 눈과 귀에 오르내렸으므로 영화는 충분히 시장에서 인지가 되어 있다.
1년쯤 지나 영화 이야기가 잠잠해지면 비디오로 출시한다. 특별한정판 DVD도 만들어 영화매니아를 대상으로 판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제 TV의 추석특집영화로 방송이 된다. 이때쯤 되면 속편의 예고편이 극장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일생이다.
제품의 디자인이 '와우!' 소리가 나올 정도로 혁신적이고 제품 자체가 마케팅 메시지라고 할 만큼 회사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담아내면 제품이 제 스스로를 광고하고 다닌다. 영화와 드라마 소품으로, 다른 광고의 장식품으로 여기저기 부지런히 불려다닌다. 한푼이 아쉬운 형편에 이런 간접광고효과는 짭짤한 공짜 보너스다.
폭스바겐의 뉴비틀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추억 속의 차인 딱정벌레를 현대적으로 다시 디자인한다. 자동차광들의 입에서 '와우!, 쿨!'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이렇게 1년간 차를 잘 팔다 반응이 시들해지기 시작하면 별스런 색상의 차를 내놓거나 터보엔진을 단 변종모델을 내놓는다.
그 약효가 다 하면 역시 특별한정품을 만들거나 무이자 할부판매를 한다. CD플레이어를 덤으로 얹어줘 신이 난 뉴비틀 구매자는 그날 저녁 TV에서 2002년형 비틀이 출시됐다는 광고를 본다. 차의 인생에도 황혼이 온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는 특히나 더해서 디자인이 차의 개성과 회사의 이념을 명확하게 담아내면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수만 대의 차가 즉석에서 광고판으로 돌변한다. 특별히 더 광고를 하지 않아도 출고된 차를 보고 새차를 살 손님들이 구름같이 몰려든다.
대선의 해, 정치행위도 마케팅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나서야 그 후보가 무슨 정책을 팔겠다는 것인지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애플은 컴퓨터를 팔지 않고 폭스바겐은 자동차를 팔지 않는다. '와우!' 인자와 '쿨!' 인자를 판다.
당신이 팔려는 '와우!' 인자는 무엇인가? 유권자는 그것을 기다린다. 다만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도 모를 뿐이다. 답을 줄 후보는 과연 누구인가?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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