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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자연적 유신론이 더 이상의 설득력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기독교의 대안적 미래를 현장 목회자의 입장에서 매우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저자인 존 쉘비 스퐁 감독은 20년 이상 미국감독교회(성공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로 일해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저술 작업을 통해 미국교회 내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동안 그는 유대교 랍비와 공개석상에서 신학 논쟁을 벌이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철폐와 사제서품을 주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과 그가 출간하는 책들의 과격한 내용으로 인해 가는 곳곳마다 보수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자들에게 자주 격렬한 반대를 받았다. 시대를 앞서고자 하는 선구자가 이렇듯 반대자를 항상 달고 살아야하는 건 필연일까.
하지만 스퐁 감독의 과격하게 보이는 신학적 주장들은 일정한 역사적 계보를 지닌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초월적 유신론의 붕괴에 관한 문제이다. 그는 오래 전에 이미 초월적 유신론을 대치하기 위해 신(神)을 "우리 존재의 근원"으로 설명한 바 있는 신학자 폴 틸리히를 따르는 제자이며, <신에게 솔직히 1963>를 써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존 로빈슨 감독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더구나 '신 죽음'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먼저 신 죽음을 가장 요란스레 선언한 철학자 니체가 있었고, 나찌 히틀러에 대항했던 신학자 본회퍼가 있었으며, 60년대에는 반 뷰렌, 하밀튼, 알타이저 같은 이른바 <신 죽음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학자들이 다수 있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기독교의 초자연적 유신론의 신 개념은 이제 적실성을 상실한지 오래이기 때문에 폐기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저자의 이 책은 앞선 이들과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을까? 먼저 신학의 대중화를 시도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그동안 신학자들만 쉬쉬하며 알고 있던 뜨거운 신학 논제를 꺼내어 일반 대중에까지 폭넓게 확장시켜 제기를 하고 있다. 둘째로 초월적 유신론이 종말을 고한 다음, 기독교 신앙이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탐색하면서 아직 낯설지만 나름의 새로운 가능성을 내 보인다.
예컨대 저자는 유신론적 하나님이 사망한 세상에서의 기도의 의미와 윤리의 새 기초, 그리고 전통적 천당과 지옥이 아닌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전의 신학자들은 이에 대해 교회의 입장에서 서서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스퐁 감독은 기독교를 살리는데 매우 헌신적인 듯 보이며, 이 열심으로 현재까지도 낡은 신을 그대로 신봉하는 기독교 전반을 전면적으로 쇄신하고자 실험적인 시도를 펼친다. 그는 이것을 기독교가 미래에도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매우 중대차대한 문제로 판단하는 것 같다. 그래서 복잡한 신학적 논거를 전개하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제기될 보다 실재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새롭게 등장할 교회의 모습과 그대로 연결된다. 그는 새로 등장할 교회를 오늘날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식 변화의 표징들 속에서 읽고 있다. 이를테면, 예배참석자들이 무릎 꿇던 것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표준적 예배형태가 사라지고 다양화되었다는 것, 예배 기도문 내용의 변화, 성직자들의 위상과 의복의 변화 등이 그러한 징후적 단서들이다.
저자인 스퐁 감독은 초월적 하나님이 사망한 시대를 정직하게 인정하고서 포스트 모던 시대를 살아 가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처음부터 '유배당한 신자들'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말하는 '유배'는 과거 유대인들의 바벨론 유배생활을 염두에 둔 말이다. 유배당한 유대인들은 처참하게 멸망한 나라를 뒤로하고 낯선 타국 바벨론에서 조상 대대로 절대시해 마지않던 성전과 율법 없는 생활을 강요당해야 했다. 당시 그들은 전통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신앙생활을 형성하도록 요청 받았으며, 그것으로 당면한 위기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했다. 이 점은 오늘을 사는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처한 위기 현실과 비슷한 것이다.
저자는 초월적 유신론 이후의 기독교 신앙의 가능성을 불교나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그 모델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불교의 오랜 전통인 무신론적 신앙과 신비주의에서 비롯된 범재신론적 신앙이 유신론을 넘어서는 신앙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현대적 상황에 적합한 세련된 신앙화의 길에 그다지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철저한 신학적 현대화를 통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제 2의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이론에 대한 자기 과신에서 나온 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독교를 살리고자 한다면 오히려 '거리 두기'를 시도하며 기독교 자체의 비의를 전수해 나가는 게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저자처럼 죽어가는 기독교를 살리는데는 골몰하고 싶지 않다. 만일 없어져야 하는 거라면 빨리 사라져 버리는 게 더 낫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살리는 일보다는 때로 고리타분하게 여겨질지라도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잇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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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존 쉘비 스퐁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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