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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1시32분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새벽 1시30분 강남 시티극장 건너편 960번 버스정류장. 그 시간 그 곳은 '자정을 넘기지 말아야 하는 신데렐라의 마법'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막차를 놓치는 경우에는 하는 수 없이 근처 24시간 만화방에서 밤을 새우거나,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이것도 서울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라면 재미, 고통이라면 고통이다. 막차를 놓치면 그 다음날은 하루종일 피곤함에 시달리며 몇 잔의 커피로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밤늦게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참기 어려운 졸음이 쏟아진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아침 일찍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해서 친구와 밥을 먹거나, 기분 좋을 땐 소주 한잔하고,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금방 밤 10시, 11시가 되는 것은 보통이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니 피곤한 건 당연하겠지만, 작년 이맘 때 갓 서울에 올라왔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타면 '왜 이렇게 피곤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자리에만 앉으면 사람들은 눈을 감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었고, 내심 내가 언제쯤 저렇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서 어림짐작을 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서울생활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피로를 느끼지 못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자리에 앉거나, 서서 손잡이를 잡고, 혹은 문에 기대서 졸고 있는 내 자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항상 시간에 쫓겨 다녀야 하는 서울생활, 피곤조차도 사람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밀려온다. ⓒ 조경국

그렇게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도 처음엔 단지 피곤을 이기지 못해서였는데, 지금은 피곤하거나 말거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눈을 감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피곤에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피곤함을 이기기 위해 눈을 감는 것으로 변했다. 부족한 잠을 그렇게라도 보충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확실하게 서울생활에 적응하게 된 것인가.

작년 서점가에는 '느림'에 대한 책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항상 시간에 쫓겨 살아야 하는 도시인들에게 한 박자 느리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 결국 생각하기에 따라서,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신의 삶이 여유로워진다는 것이 결론이지만, 바쁘게만 살다가 '느림'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가진다는 것만 해도 사람들에겐 꽤 신선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제는 피곤하기 때문이 아니라 피곤을 이기기 위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 ⓒ 조경국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책장을 덮자마자 모든 것이 빠르게만 움직이는 서울생활로 돌아와야만 한다.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순서를 정해야 하고, 생리적인 현상조차도 가끔은 잊어 먹고 지나버리는 도시생활에서, 다이어리에 빼곡이 오늘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 치 계획을 세워놓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라는 것은 한낱 사치일 뿐이고, 잠시동안 주어지는 '여유'도 '피곤'을 풀기 위한 것으로 사용되어야만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왜 갑자기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피곤함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뜻일까.

▲ 몸을 뉘어 잠을 청할 수 없는 빠듯한 하루,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책상에 엎드려 단잠에 빠진 직장동료.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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