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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노인에 그다지 별 관심이 없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요즘은 젊은이들이 일상에서 노인을 대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공부하고 일하느라 노인들이 대체 어찌 하루를 살고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사는 우리이지 않는가?
작년에 지역사회를 섬기며 지역에 뿌리내리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 보겠다며, 아주 작은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리고 지역을 살피던 중, 교회 가까이 있는 공원에 노인들이 무료히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작년 여름 어느 날엔 농협에서 공원에 야외 텐트까지 쳐두고, 약장수들 약 판매할 때처럼 노인들을 가득 불러모아 자기들 물건 선전에 열을 올리는 모습도 목격하였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런 곳일망정 흥미를 가지고 참석한 노인들도 안타까웠지만, 노인들에게까지 장삿속이 훤히 내다보이는 침을 튀기며 자기네 상품선전을 펴대는 젊은 사람들이 정말 볼썽사나웠다.
한 달 전부터 노인들을 위해 교회에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매주 토요일 지역 경로당 두 곳에 차 대접을 하기 시작했다. 경로당을 방문하면서 내가 놀란 것은, 경로당에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일상이었다.
할아버지들은 매번 방문 때마다 심심풀이 화투로 시간을 보내고 계셨고, 할머니들은 주로 누워계시곤 하였다. 그 분들은 우리가 방문하면 박수까지 쳐주시며 기뻐해주셨는데, 그만큼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멀찍이 밀려나 있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갈수록 힘이 닿는 데까지 노인들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노인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게 없었다.
이 책을 읽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헨리 나웬은 뛰어난 영성가로 우리나라에도 그의 책이 많이 번역되어 이미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한때 하바드대 교수 생활을 하다가 정신박약아 등 장애인들을 섬기는 일에 남은 생을 바쳤다.
이런 저자가, 자신의 인생경험과 예리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서 "늙음"을 사색한 책을 쓴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늙음에 대해 이처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주변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쉬라는 사람이 찍은 사진이 곳곳에 적절히 곁들어 있어 책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삶을 수레바퀴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즉 "늙음이라는 건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과 같은데, 삶의 한바퀴를 천천히 완성해 가면서, 받음이 나누어줌으로 여물며, 삶이 죽음을 값있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늙음이 슬픈 운명이며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픈 무시무시한 병적 현실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다다르게 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절망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인생체험을 나눔으로 희망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늙음에는 빛과 그림자가 뒤엉켜 있다. 노인은 그 인생의 경륜을 통하여 젊은이들에게 선생님과 예언자가 되며, 희망, 익살, 비전과 같은 빛을 던져준다. 반면 어두운 그림자로는 "쓰레기처럼 취급받았다"는 노인의 자기 상실과 노인 차별, 따돌리기, 배척의 만연을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은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게 글쓴이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노인을 돌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나아가는 걸 말한다. 내가 "그들"에게 나아가 돕는 게 아니라, 노인들이 내 삶의 중심에 들어오도록 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자기 안의 공간을 마련하는 게 노인 돌봄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돌봄은 "모든 세대가 서로 소통하면서 창의적이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어야지 무슨 특별한 전문가들의 일로 여겨 그들에게 내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최근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에 갔다가 나도 익히 아는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불과 얼마 전까지, 며칠 동안이나 식사를 걸러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는 말을 하며 돌아다니시곤 했다는데 결국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었다.
젊음을 믿고 영원히 살 것처럼 자신의 일에만 골몰하며 바삐 쫓겨다니는 우리도 언젠가는 이렇게 쓸쓸히 임종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우리나라도 더 이상 노인문제를 방관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이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여 현대판 고려장을 끝내고 노인들을 우리 삶의 중심에 받아들이는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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