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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우 공동체인 성심원에서 일박하고 산청읍내로 향합니다. 성심원 원장이신 프란치스꼬 수사님은 서울에 가는 중이고 나는 다시 실상사로 넘어 가는 길입니다.

한적한 도로에 트럭 한 대가 뒤따라 옵니다.
짐칸에 돼지 한 마리가 실려 있습니다. 장에 팔러 가는 것일까. 좌석에 여럿이 탄 것을 보니 아마 추렴하려고 어디서 사가는 모양입니다. 아침 일찍 사람은 살아보겠다고 길을 나서는데 돼지는 사람 손에 이끌려 죽으러 갑니다.

심사가 착잡하여 고개를 돌리려는데 돼지가 고통스런 비명을 지릅니다. 돌아보니 돼지 앞다리 하나를 그대로 밧줄에 엮어 트럭 난간에 매달아놨습니다. 쉽게 운반하려고 그런 것 일테지요. 왼쪽 다리는 비틀릴 대로 비틀려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고, 오른 다리 하나로 버틸려니 자꾸 뒤뚱거립니다.

수사님과 나는 동시에 소리지릅니다. 저거 저러다 부러지는 거 아냐. 그래도 참 어쩌지는 못하고, 수사님은 "푸란치스꼬 성인 같았으면 차를 세우고 돼지를 사서 풀어 줬을 텐데", 탄식합니다.

돼지는 고통에 찬 비명을 그치지 않고, 우리는 막막합니다.
이미 다리가 부러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요. 돼지라고 고통을 모르겠습니까. 곧 죽을 목숨이라고 목숨이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인간을 고문하고 죽이는 인간들도 있는데 돼지쯤이야 하고 위안 삼으며 지나쳐도 되는 것일까요.

돼지에게 함부로 하는 마음이 인간에게도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생명을 가책 없이 해치는 마음이 자라나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돼지를 실은 트럭이 어느 마을 안 길로 사라져 간 뒤에도 우리는 애절한 돼지의 비명소리에서 놓여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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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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