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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의해 주목받지 못해서 묻혀버렸지만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기엔 너무나 아까운 소설 한 편이 있다. '한톨의 밀알'(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들녁출판사)이라는 소설이 바로 그러하다.

'한톨의 밀알'이라는 소설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소설이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 영미 문학이 외국 문학의 전부인 양 교육받았던 우리에게 아프리카 작가의 소설은 낯설기만 하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지명과 주인공의 이름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이 소설을 읽는데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아프리카가 우리나라와 결코 다르지 않다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오히려 우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미국보다, 아프리카가 훨씬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소설을 읽는 내내 느끼게 한다. 우리와 똑같이 식민지시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소설은 그간 우리가 아프리카인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배고픈 민족, 백인에 순응하는 민족, 종족 번식에만 관심있는 민족)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 었느냐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질투하고, 정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한톨의 밀알'이라는 책은 1963년 12월 12일 케냐 독립 전후를 다루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각 개인은 시대를 어떤 식으로 대응하며 그 결과로 겪게 되는 인간적 고뇌가 무엇인지 고민하게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이다. 특히 배신이라는 모티브가 이 소설의 뼈대를 구축하고 있다.

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응구기는 '숲속의 전사'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민중들이 '한톨의 밀알'이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응구기는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그들이 왜 배신할 수밖에 없었고, 배신의 결과 자신의 삶이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대한 문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소설 속에 나오는 케냐의 마우마우(독립운동)는 일제시대 때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군을 떠올리게 하고, 영국의 지배 하에 있던 케냐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심리적 갈등을 보면서 일제시대를 살았던 우리 민중들이 겪었을 심리적 고통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이 소설은 나 자신을 일제시대 민중의 한 사람으로 투영시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톨의 밀알'의 작가 응구기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없이 거론됐을 만큼 '세계적인' 작가다. 케냐의 독재정권에 의해 조국에서 쫒겨나 현재 미국에 망명 중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영어로 집필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책 중간에 나오는 '우후루(해방)', '마우마우(독립운동)'와 같은 아프리카 원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는 영어를 쓰지 않고 아프리카 원어를 쓰는 것이 식민주의를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응구기의 믿음에 근거한다.

작품 활동 내내 '탈식민주의'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 응구기가 이번 소설에서는 어떤 식으로 그 고민을 풀어냈을 지 지켜봄으로써 우리 사회의 식민성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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