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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가고 퇴근 무렵에는 술집이 붐비게 마련이다. 각자 다양하게 사는 것 같지만 하루 일과를 살피면 사람마다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삐끼들은 언제 어느 목을 잡아야 손님을 낚을 수 있는지 알고 있고 용돈이 궁한 아이는 아버지가 술 한잔 걸쳤을 때 접근해야 그나마 돈을 받을 수 있음을 안다. 이런 것은 모두 시행착오와 경험으로 체득하는 법이다.

누가 언제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할지 안다는 것은 그래서 장사의 기본이다. 그렇긴 해도 대체로 주먹구구이고 잘 해야 확률 50%의 게임이다. 50%의 확률게임에서 누구의 육감이 승리를 거두었는지는 철마다 바뀌는 간판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이 자리를 지금 이동통신회사들이 차지할 기세다. 아니 최소한 그것이 가능한 테크놀로지를 확보했다.

"회사원 세연은 요새 심기가 불편하다.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의심때문이다. 세연은 재미삼아 남자친구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수호천사'를 켜 놓았다. 세연은 이제 남자친구가 휴대폰을 켜 놓고 있는 한에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손바닥 보듯 알 수 있다. 수호천사의 대상이 된 사용자의 위치를 휴대폰 회사의 웹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지도 위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르고 애인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세연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세연은 기껏해야 애인 한명의 위치만을 알 수 있을 뿐이지만 통신회사는 수백, 수천만 가입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로밍기능을 이용하면 이론상 해외출장을 나간 사람도 추적이 가능하다. 고객이 언제 어느 곳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은 장사의 기본이다. 휴대폰회사의 위치추적기술 탓에 이제 적중확률은 100%로 올라간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엄청난 정보장사다. KTF의 웹사이트에 가면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정밀한 지도를 찾을 수 있다. 그냥 지도가 아니고 앞집의 통닭가게, 건너편 서점 위치까지 세밀하게 나와있는 정밀지도다. 그 지도 위에서 움직이는 1천만 가입자의 위치정보를 상상해 보자. 휴대폰 가입할 때 적어낸 당신의 개인정보가 지도위에서 실시간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이런 막대한 부가가치정보를 통신회사가 독점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다. 1천만 가입자의 실시간 사생활을 사기업의 통제 하에 놓아 두어서도 않된다. 통신회사는 스스로 파이프 역할 만을 할때 사회의 이익이 극대화 될 수 있을 것이다. 파이프 속으로 무엇이 통과할 수 있는지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려 든다면 혹은 이 권세를 휘둘러 이익을 독점하려 든다면 이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데 일조한 수천만 가입자의 권리를 남용하는 것이다. 인프라 구축업자로서 투자한 비용을 뽑을 수 있도록 통과세만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종께서는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고생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다. 집현전 학자들의 녹을 지급한다며 해마다 열냥씩의 사용료를 물렸다면 한글은 아예 살아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돈 있는 소수의 특권층 문자로 명맥을 이어가고 백성은 일본의 가나나 서양의 알파벳을 울며 겨자먹기로 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백성'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무료 배포한 것처럼 인터넷 역시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접근해 이용하고 창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인터넷의 속성이 바로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통신회사에 접속료를 내지만 통신회사의 역할을 그것으로 끝난다. 그 누구도 컨텐츠의 내용을 결정하거나 서핑할 수 있는 네티즌의 권한을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인터넷 전체를 관할하는 독점적 통제자가 나타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도록 통신망을 설계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인터넷을 대체할 무선인터넷이 새로운 공공재로 떠오르고 있다. 게다가 가입자의 위치정보 탓에 유선인터넷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초강력 부가가치 공공재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다. 이 명백한 공공재를 사기업의 손에 맡겨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훈민정음을 백성이라는 공공의 손에 맡겨 둠으로써 한글은 언문의 위치에서 벗어나 한국민의 가장 유용한 공공재산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한글 없는 정보화와 경제발전을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공공재인 무선인터넷은 이제 공공의 손에 돌려 주어야 한다. 인터넷이 바로 그렇게 해서 오늘처럼 발전했기 때문이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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