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라면 자유공원과 얽힌 추억을 한둘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계절에 따라 푸른 쪽빛과 벚꽃의 아름다움을 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새벽이면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지역 주민들로 북적이는 그곳. 1호선 동인천역에서 하차하여 차도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응봉산(일명 매부리산)을 오르고 나면 누구나 소소한 풍취를 자랑하는 그곳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의 큼지막한 유원지의 광채에 비하면 너무나 소박한 외양 때문일까, 자유공원(1888년)이 서울의 파고다 공원(1897년)보다 9년이나 앞선 공원이라는 곳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개항과 해방 이후에 거센 역사의 풍랑을 겪어온 장소라는 것도.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이지만 자유공원은 서구열강의 영향력 하에서 만들어진 공원이다. 자유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응봉산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개항 이전까지만 해도 해발 69미터의 자그마한 야산에 불과했다. 1883년 일본과 청국이 선린동 일대에 지계를 설치하자 영국과 미국, 독일 등 3개국도 서둘러 해안지대와 응봉산 자락 14만평을 쪼개 지계로 만들었다.
각국 지계는 A,B,C,D 4등급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그 중 D등급으로 분할된 것이 지금의 자유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자유공원이 「공원」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88년. 그 당시 독일인이 경영하던 세창양행에서 부지를 매입, 직원들을 위한 서양식 사택을 지은 후 제물포구락부(현 인천문화원)가 들어서면서부터.
자유공원은 처음에는 각국공원(各國公園)으로 불리었으나, 일제가 국권을 찬탈하면서 서공원(西公園:일본인들이 이른바 신사를 지어놓은 동공원이 따로 있었음)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만국공원(萬國公園)으로 부르던 것을 인천시가 1957년에 정식으로 자유공원(自由公園)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지금까지 같은 이름으로 불리어 오고 있다.
자유공원을 천천히 오르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홍예문. (일명 무지개다리), 여름이면 울창한 담쟁이덩쿨이 다리를 온통 감싸고 푸른 빛으로 반짝이고 있어 아름다운 정취를 자아내곤 하기에 인근 주민들의 데이트 코스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도 일본인들이 자국의 조계와 축현역(현 동인천역)을 연결시키려고 응암산 줄기를 뚫어 만든 곳. 자유공원 곳곳에는 그렇게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시대에 이르는 우울한 역사가 잠들어 있다.
자유공원에 오르고 나면
자유공원에 이르고 보면 눈 가득 들어오는 것은 인천항의 풍경. 시간을 잘 맞추어왔고, 날씨만 구색을 맞추어준다면 온 항구를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항구를 감상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공원 중앙에는 맥아더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맥아더 동상은 1957년 10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당시 우리는 미국의 원조 없이는 버틸 수 없었던 상황. 그래서였을까, 맥아더 동상은 용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당시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일깨워주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이제 맥아더동상을 송도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시민들 사이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에 인천시는 이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아직 맥아더동상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뿐이다.
자유공원에서 가장 큰 조형물로 자리잡고 있는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이 이에 대한 비가시적인 해답으로 존재한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자유공원은 우리의 씁쓸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장소이다. 조선시대 말기의 음울했던 시기를, 일제시대의 암담했던 시절을, 그리고 전쟁의 상흔을 품고 있다. 최두석 시인의 시가 이러한 자유공원의 추억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나 할까.
인천 자유공원에서
최두석
인천 사람들이 연애를 할 때면
으례 들르는 자유공원
황해의 황홀한 일몰을 구경하다
은근히 손목을 끌어쥐는 곳
특히 한미수교백주년 기념탑 으슥한 그늘에서는
돌연 입술을 맞대기도 하는
추억의 공원
아, 우리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솜사탕을 사먹으며
새점을 치고 관상사주를 볼 자유인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푸드득거리는 날개에 둘러싸여 사진 찍을 자유인가
이 땅의 자유는 실로 연애의 자유에서
과연 얼마나 더 나아갔는가
공원은 그러한 소중한 자유를
더글라스 맥아더라는 자가 주었다고
가르친다
망원경을 들고 우뚝 서서
그가 상륙했던 월미도를 바라보며
맥아더의 동상은 설교한다
자유는 곧 미국이요 미국은 곧 자유라고
그렇지만 자유가
민족의 분단처럼 외부에서
일방적인 산물로 주어질 성질의 것인가
도대체 자유라는 게
부두에 무심히 쌓아올려지는
수입 쌀이나 밀 같은 것인가, 아니면
기관총이나 미사일 같은 것인가.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