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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무심코 눈과 신문의 거리를 조금 더 멀리 하는 나의 행동을 문득 깨달았다. '나도 이제 노안(老眼)인가?'하는 생각이 별다른 느낌없이 다가왔다.

눈이 그리 나쁘진 않지만 약간의 난시와 근시가 있어 책을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을 때 그리고 영화나 텔레비전을 볼 때 안경을 써왔던 데다가, 어르신들과 생활하면서 워낙 노안은 당연한 일로 여겨서인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돋보기(노안경, 老眼鏡)를 쓰게 되니 덤덤했던 마음은 간 곳 없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되는 것이었다. 처방을 한 의사도, 안경점 주인도 '기분이 좀 그렇지요? 다들 그러시더라구요'하며 인사를 건넨다.

집에 돌아와 친정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엄마, 나 돋보기 썼어요"하는 보고에 "그러니? 때가 되면 다 그렇지, 써야 되면 써야지" 무심히 말씀하신다. 어렸을 때 '내가 돋보기 없이 글 못읽는 것보다 이 다음에 내 딸이 돋보기 쓰는 걸 보면 더 기가 막힐 거다'하시던 말씀은 어머니 기억에서 사라진 듯하다.

"엄마, 딸이 돋보기 쓰는 거 보면 기가 막힐 거라고 했던 것 기억 안나요?" "얘, 돋보기보다 머리 하얗게 세는 게 더 이상하더라"로 답하신다. 40대 후반인 오빠의 늘어나는 흰머리칼을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노안(老眼, presbyopia)이란 눈의 수정체의 탄력성 감소로 인한 원시(遠視)를 말하는데, 보통 40대 후반부터 진행되기 시작한다. 노안은 원시이기 때문에 가까운 것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책이나 신문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멀리 놓고 보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안 보인다고 하시며 '돋보기 가져 와라'하시던 것, 어머니가 바늘귀에 실을 꿰시면서 '돋보기 가져와라'하시던 것이 생각난다. 이렇게 잘 보이는데 왜 안 보이신다고 하실까 하면서, 신기한 물건인 양 몰래 돋보기를 써보곤 하던 어린 아이가 이제 정말 돋보기를 썼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모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늙어가는 일을 거부하며 기를 쓰고 늙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나, 반대로 지나치게 앞당겨 스스로에게 노화를 주입시키며 지레 주저앉아 버리는 것 모두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들어 노안이 오면 돋보기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신체적인 변화, 심리적인 변화, 정신적인 변화, 사회적인 역할의 변화, 가족을 비롯한 인간 관계의 변화 모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앞으로 우리집에서는 75세의 어머니와 43세의 딸이 돋보기를 쓰고 마주앉아 신문 기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평균 수명 75세(남 71.7세, 여 79.2세) 시대에 이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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