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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을 위한 읽기 시리즈로 나온 <할머니>는, 교통 사고로 부모를 잃고 하루 아침에 혼자 남겨진 칼레와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다섯 살 칼레가 할머니 댁으로 옮겨 함께 살며,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으며 하루 하루 생각이 키만큼 커나가 열살 생일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칼레보다 예순 살 더 많은 할머니는 씩씩하다. 가난한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 억척스레 일만 해온 할머니. 목소리가 크고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하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라고는 없는 할머니다. 그러나 누가 할머니 마음 속을 짐작이나 할까.

아들과 며느리를 앞세우고, 어린 손자를 맡은 할머니는 칼레가 잘못 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어떻게 길러야 할지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린다. '그럴 리는 없다'고 믿고 싶지만 결국 할머니의 병원 입원 경험을 통해, 칼레와 할머니 두 사람 모두 언젠가는 칼레 혼자 세상에 남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알고는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칼레가 갈 곳을 알려 주는 할머니. 그 할머니한테서 부엌 냄새와 오래 된 옷감 냄새를 맡으며 울먹이는 손자. 어려운 살림살이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누는 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로 시작하는 그림책 <우리 할아버지>는 초등학생인 손자가 들려주는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평생 시골에서 일만 하며 살아오신 할아버지가 도시에 있는 아들네로 오셔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신 과정을 짧게 담고 있다.

할아버지께 자신의 방을 내드려야 하는 손자, 아버님의 식성에 맞춰 식사 준비를 해야 하고 담뱃재를 아무 데나 털고 다니셔서 집안이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은 며느리, 아버지의 반복되는 지난 시절 이야기에 식구들 눈치를 보는 아들. 도시에 자리잡은 아들네로 옮겨와 살면서 힘들어 하는 우리의 부모님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고장난 물건을 잘 고치고 손재주가 뛰어나셨던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물건들을 보며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손자. 하고 또 했던 지난 시절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할아버지가 자신의 방에 좀더 오래 계셨어도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손자.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미 떠나셨다.

우리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구일까. 잔소리로 귀찮고 짜증나게 만드는 그냥 나이 많은 어른일까? 가끔씩 만나는, 명절에는 두둑히 용돈을 주시는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일까? 칼레의 할머니처럼 세상에 단 한 사람 존재하는 영원한 내 편일까?

혼자 연금으로 살아가는 할머니가 고아가 된 손자를 기르고, 시골에 살다 도시의 아들네로 오신 할아버지가 군식구처럼 여겨지는 것은 어쩜 이리도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호주나 똑같은지. 노인 문제 역시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푸근한 사랑을 전해주는 칼레의 할머니. 마음이 편치 않은 도시 생활이지만 손자를 위해 장난감을 고쳐주고 작은 물건들을 만들어주는 할아버지. 아마 시간이 많이 흘러도 아이들에게 그 사랑과 그 손길은 남아 오래 기억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관계를 생각하며, 그래도 나는 아이들이나 그 부모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먼저 질문드리고 싶다.

…손자 손녀에게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이신가요? 정말 이 다음에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셨는지요?…

<할머니>에서 각 장의 뒤에 짧게 붙어 있는 할머니의 독백은 책 읽는 맛을 보태준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자라서 그림책을 구입할 시기가 지났다면, 책방에 가는 길에 그 자리에 잠깐 서서 읽어봐도 될 정도로<우리 할아버지>는 간결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짜증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최고!"로 가는 길은 분명 있다. 칼레와 할머니가 그랬듯이 사랑하면 되지 않을까. 그 사랑을 상대방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나눠 주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할머니, 페터 헤르틀링 지음, 박양규 옮김, 비룡소 2001 / 우리 할아버지, 릴리스 노만 글, 최정희 옮김, 미래M&B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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