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2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내 인생은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만 7년이 넘게 꾸준히 해오던 직장 생활을 포기했으니 내게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직장 구하기가 어려운 때에, 그것도 아이 딸린 아줌마가 말이다.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에서 남편을 만났다. 사내 커플로 결혼을 한 후에도 함께 직장 생활을 했지만 별 어려움은 없었다. 얼마 후 아이도 갖게 되었다. 이제 만 15개월이 된 아들은 출산휴가 2개월이 끝나자마자 놀이방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마음은 아팠지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 아이는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5년 넘게 다니던 회사였기에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힘든 시기 다 넘겨놓고 이제 와서 회사를 그만두면 어쩌냐고, 더군다나 요즘은 혼자 벌어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인데 어쩔 거냐며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충고했다. 또 어떤 이들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며 아주 잘한 결정이라고도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사직서를 내고 회사 문을 나선 지 두 달이 가까워진 이 시점에서도 명확하게 '이것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 한꺼번에 물 만난 고기떼처럼 내 등을 떠밀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새로울 것도 없고 빛도 나지 않는데 늘 반복되는 업무와 회사 내에서의 나의 위치에 회의가 들었다. 해를 거듭하다 보면 진급은 되겠지만 하는 일은 늘 똑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뚜렷해 보였고, 무엇보다 한참 어린 남자 후배들도 하지 않는 잡일을 여자라는 이유로 해야만 할 때의 자괴감은 점점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까지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거기서 시작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거기다 집안일과 육아까지 겹쳐 많이 지치고 힘들기도 했다. 다행히 남편은 육아에도 적극 참여하고 집안일도 함께 하는 편이라 많은 위안이 되었지만, 내 몫의 일은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가만히 안겨주는 우유나 먹던 아이가 이제는 엄마 아빠와 똑같은 밥을 먹으려 들고, 제 발로 걸어다니고, 뜻대로 안되면 떼를 쓰기도 할 만큼 자라고 보니, 크면 클수록 마음을 더 짠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와도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내린 결론은 '아침저녁 출퇴근 전쟁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는 거였다. 그때 만난 것이 이른바 내공프로그램이었다.

아줌마 여성운동가 이숙경 님이 '내공프로그램'을 통해 아줌마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공'을 길러준다는 신문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평소에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던 나였기에 '아줌마' '내공'이라는 말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그렇게 내공프로그램의 '글쓰기로 돈 버는 힘 기르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던 자유기고가 과정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일 찾기에 나서게 되었다. 평소에 하고 싶던 일이었기에 더 신이 났다.

하지만 그 3개월 동안 마음 고생도 참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강의였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강의를 듣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다 강의가 끝나고 저녁이라도 먹게 되면 9개월 된 아들을 혼자 보고 있을 남편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어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그리고 매주 한 강의가 끝나면 주어지는 과제는 꼭 밤을 새워야만 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집안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다음, 아이까지 재워야 온전한 내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과제를 해서 다음 강의에 가면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빨간 볼펜으로 거의 낙서장을 만들어놓았다. 거기다 인터넷 서핑은 물론, 도서관, 서점을 짬짬이 돌며 온갖 자료를 다 뒤져야 했고, 인터뷰할 대상이 섭외되지 않아 사무실까지 가서 진을 치며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힘든 3개월 과정이 끝나고 알음알음 소개로 잡지에 '자유기고가'란 이름으로 몇 번 글도 쓰게 되었고, '줌마네(www.zoomanet.co.kr)'의 웹진 일까지 하게 되면서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주변의 염려가 아니더라도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나름대로 엄청난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아침저녁 출퇴근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놀이방에 안 보내도 되고, 프리랜서란 달콤한 유혹도 짜릿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내 등을 마구 떠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면에는 좀더 현실적인 내가 한쪽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과연 글쓰기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내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몇 달은 버티겠지만 계속 수입이 없으면 저축은커녕 보험까지 다 해약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만약 힘들면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취업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야할지도 모르는데, 무엇보다 가정 경제는 남녀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신조가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온갖 생각들로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때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은 하고 싶은 일 있으면 서로 하면서 살자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편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러면서 자기도 회사 다니기 싫을 때가 참 많다며, 몇 년 후에는 자신이 회사를 그만둘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그럼, 공평하게 자기에게도 한 번 기회 줄게."
그렇게 해서 직장이 아닌, 나만의 홀로서기에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다.

아이는 지금도 놀이방에 다닌다. 아직 너무 어린 까닭에 아이를 데리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종일반에서 시간을 단축해 아이와 있는 시간도 그만큼 더 늘어났다.

이제 두 달째, 갑자기 주어진 시간, 그것도 낮 시간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적응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직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처지라 갑자기 일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동안 여기저기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나를 알리는 일을 해 왔다.

덕분에 지난 11월엔 오마이뉴스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돈'은 안됐지만,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이 생활에 적응도 되었고,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홀로서기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모두 나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 것이다. 강지숙 파이팅!

덧붙이는 글 | 지난 2주 동안 진행해 온 '아줌마들만 봐!' 연재를 이제 끝마치려고 합니다. 

아줌마들의 생각과 사는 모습을 담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고, 그에 따른 반론도 물론 많았습니다. 이 연재가 끝나더라도 아줌마의 눈으로 세상보기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 동안 관심 가져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줌마들만 봐!' 연재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r)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입니다. 줌마네는 아줌마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방법을 함께 찾기 위한 공간으로 내공프로그램 2기 자유기고가 과정은 3월 28일부터 4개월 동안 진행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글을 쓴 저 또한 줌마네에서 기획과 운영을 함께 하고 있는 아줌마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