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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혈단신인 박정수(37) 씨는 영등포역 뒤쪽에 어렵게 마련한 전세방의 전세금을 빼서 신길5동 언덕배기에 허름한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총 평수 27평인 이 집 이름은 한울타리 사람들. 박씨는 노숙자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집을 꾸며 4일 드디어 개소를 했다. 이 방에 살 가족은 박씨와 노숙인들.

일반 가정집에서 노숙자와 노숙자 실무자가 같이 사는 노숙자 쉼터는 한국에서 최초다. 특히 정부 지원없이 개인이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는 것도 박씨의 경우가 처음이다.

박씨는 98년부터 신월복지관에서 노숙사업을 담당해 왔다. 이번 2월 28일에 신월복지관에서 진행하던 노숙사업이 중단됨에 따라 박씨는 그동안 계획해 온 실험을 예정보다 빨리 실행에 옮긴 것이다.

박씨의 계획은 일반 가정집을 구해서 노숙자들을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여 자신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박씨는 노숙자들에게 숙식, 직장알선, 용돈관리, 타 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러 프로그램 참가의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한울타리 사람들'을 만들었다.

박씨가 이번에 시도하는 실험은 그 동안 정착되지 못한 노숙자 사업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나왔다.

97년 IMF 이후 갑자기 늘어난 노숙자를 수용하기 위해 노숙자 쉼터는 대부분 종합복지관 안에 가건물 형태로 지어졌다.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합복지관 안에서도 노숙자들을 계속 데리고 있기가 부담스러워졌고 그 결과 노숙자 쉼터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숙자 실무자들은 새로운 형태를 강구하게 되었고 박씨의 경우가 물꼬를 튼 경우다. 이번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박씨는 자신의 실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도기적 노숙자 쉼터에서 전문적인 노숙자 쉼터로 가는 과정에서 제가 첫 걸음을 뗀 거죠. 제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실무진들이 부담을 가질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일단 경제적으로는 제가 여태까지 벌어놓은 돈도 있고 전세금 빼고 남은 돈과 퇴직금이 있어서 두 달은 견딜 것 같습니다. 처음 만들 때부터 후원회 모금으로 운영하기보다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막노동을 하든지 새벽에 신문을 돌려서라도 운영해야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 없이 혼자서 살았기 때문에 이 정도 어려움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박씨가 이런 노숙사업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조금 특별하다.

"선배하고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잘 안 되어서 거의 노숙자 처지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영등포역 뒤에 살면서 돈이 없어 밥을 굶은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죠. 그 무렵 신월복지관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된 것이 노숙자사업에 참가하게 된 계기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박씨의 노숙자 사업은 한 30대 남자의 가정 복귀를 계기로 박씨 인생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제가 신월복지관에서 근무를 하던 중 30대 후반의 남자가 입소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남자는 직장에서 쫒겨나 계속 백수생활을 하다가 부인에게 쫒겨나 복지관에 온 경우였죠. 당시 그 남자는 알코올 중독 상태였고, 심하게 손을 떠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어요. 복지관에서 친교·알코올 프로그램을 겪으면서 차차 안정을 찾아가다가 취업까지 하게 됐습니다. 취업 후 부인과 가끔 연락을 하더니 다시 가정에 복귀하더군요. 그때 저는 이 사업이 정말 중요한 일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기 자신조차 포기했던 삶이 누군가에 의해 구조된다면 그것보다 귀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씨의 노숙자 사랑은 계속 이어져 '한울타리 사람들'을 만드는 일까지 오게 되었다. 현재 '한울타리 사람들'은 비인가단체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오직 박씨의 재산(?)과 박씨를 후원해주는 이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박씨 혼자서 10명 정도의 노숙자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박씨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박씨는 앞으로 자기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많은 욕심없습니다. 그냥 우리 집에 노숙자 열 사람이 들어와서 한 사람만이라도 재활해서 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다만 저같은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나면 좋겠어요. 한 실무자가 노숙자 한 명만이라도 제대로 사회에 복귀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일이겠어요."

박씨는 이번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앞으로 자신이 사업체를 꾸려 노숙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새로운 실험에 도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개소식에는 햇살보금자리 이원기 선생, 신월복지관 김인숙 관장,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정부용 목사, 박진석 영등포 산업선교회 총무, 문헌준 노실사 대표 등 여러 노숙자 실무자들과 벧엘교회 신도들이 참석해서 박씨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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