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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역에서 내리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4일(월) 오후 2시 20분, 이미 약속시간에서 20분이 지나 있었다. 한겨레신문사가 어디냐고 묻는 기자에게 사람들은 앞쪽을 가리켰고 그 쪽으로 뛰어간 지 10분이 지나 도착한 한겨레신문사 건물은 붉은 색깔의 독특한 외양으로 하나의 전투요새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요새에서 ‘투사’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환한 웃음을 지닌 50대 중반의 남자 한 명이 기자를 맞아줬다. 홍세화 한겨레 편집국 기획위원(55).

“이회창 이 사람, 고약한 사람이야. 양심은 무슨 양심.” 신문사 근처의 한 카페에 들어가 마실 것을 주문하고 있는 사이, 기자가 준 외대학보 799호에 실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인터뷰 기사 중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형은 양심에 따른 결정’이라는 대목을 보고 홍 위원이 말했다.

“참 뻔뻔한 사람… 그런데 사람들이 그 뻔뻔한 것을 용인하는 게 더 큰 문제야.” 그는 지난 1월 16일, 남민전 사건으로 망명자가 된 이후 23년만에 영구 귀국해 한겨레에 입사, ‘왜냐면’이란 토론면을 맡고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 나오는 ‘왜냐면’을 위해 취재당일도 홍 위원은 바쁜 기색이었다. 그는 이번 ‘왜냐면’(3월 5일자) 에는 지난번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한 철도노조원의 글에 대응하는 철도청 직원의 반론이 실린다고 전했다.

“한겨레신문이 한국시민사회의 토론지면으로 작용한 것이죠. 한겨레의 실제적 주인은 한국의 시민사회이니까요. 신분, 지위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기존신문은 어떤 사안에 대해 ‘다뤄줘야’된다고 생각하지만 ‘왜냐면'은 시민 스스로가 참여하는 장이에요. 나는 한겨레신문과 한국시민사회의 다리역할을 하는 셈이죠.”

- 굉장히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올 수 있겠군요.
“그렇죠. 지금까지 한겨레가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는데 그런 비판자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한다는 측면도 있고…. 한겨레의 기본적 편집방향보다 폭을 넓히는 것이며 편집방향과 전혀 다른 글도 당연히 들어갑니다. 첫째, 글로 쓰고 둘째, 논리성이 있고 셋째, 합리성이 갖추어진다면 말이죠. 그리고 모든 글에는 반론과 비판이 가능해서 시차를 두고 ‘침투’를 할 수 있도록 했어요.”

홍 위원은 현재 ‘왜냐면’에 글은 많이 들어오지만 내용에 비해 글쓰기의 기본이 안 돼 있는 글이 많다며 자기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과정을 비판했다. ‘왜냐면’은 토론면이다. 자연스럽게 든 의문 하나.

- 한국사회의 토론문화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는 것 같아.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일단 부정을 해요. 그러니까 억지가 나오고 우기고… 합리성으로 경쟁할 줄 모르는 거지. 기성언론은 지금까지 자기와 다른 의견을 한번도 실은 적이 없다고. ‘왜냐면’은 그런 틀을 완전히 뒤집은 거죠.”

- 토론문화의 부재에 한국사회의 교육과정이 끼친 영향이 큰 것 같은데요.
“어렸을 때부터지. 프랑스에선 아기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이 ‘왜’인데 우리나라에선 부모가 ‘왜’라는 질문을 묵살해버린다고. 학교에서는 주입식교육으로 ‘왜’를 살리기가 불가능하고, 군대나 사회에서도 어림없지. ‘왜’라는 질문이 없으니 결국 힘의 논리가 관철되죠. 박정희 기념관을 만들면 안 된다고 아무리 해도 힘으로 눌러 버린다고. 합리적 논거를 가지고 비판과 재비판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토론문화인데 그것이 죽어버린 것은 한국사회에서 불행이죠.”

홍 위원은 토론문화를 살리기 위해 서는 어렸을 때부터 ‘왜’라는 질문을 무시하지 않는 것부터 주입식교육을 토론식으로 바꾸는 등 하나하나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것이 대안이라 했다. 그는 또 사회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번 파업 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실어주는 신문을 ‘한겨레’외에 찾아볼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폭찌라시’라고까지 불리는 수구보수언론. 그의 의견을 듣기 위해 변죽을 울리기 시작했다.

- 최근 3·1절에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 친일파 명단 발표와 관련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왜곡보도를 했는데요.
"뻔뻔한 거지. 여기서도 ‘발행부수’로 표현되는 힘의 논리가 관철된다고. 지금 민족지란 얘기는 쑥 들어갔잖아? 봐,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이 깨있지 못한 것을 단계적으로 이용한다고. 지금은 ‘옛날 얘기를 지금해서 무슨 필요가 있나’ 이따위로 얘기하는데, 생각해봐. 사적인 관계도 잘못한 쪽이 사과해야 사귐이 이어지는데 공익을 표방하는 신문은 어떻겠어? 친일과 독재찬양의 증거가 다 있는데 일언반구 없이 오만하게… 그러니까 반민주적, 반민족적인거야. 그나마 중앙일보는 합리적 보수의 가능성이 있는데 동아일보는 점점 더 추해지고 있고 조선일보의 경우 부시 관련기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지극히 반민족적이지.

그리고 이번 김동성 씨 금메달 실격 사태를 다룬 조선일보 만평에서 볼 수 있듯이 노하우가 쌓여 있어. 대중을 아주 낮은 단계에 놓고 보아야만 그런 만평을 그릴 수 있다고. 정말 악독한 신문이지. 세상에 신문사가 호텔하는 데가 어디 있나?”

신랄하다 싶을 만큼 격렬하다. 그는 ‘왜 안티동아가 아닌 안티조선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훨씬 더 악독하니까’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점점 얘기는 조선일보로 중심을 잡아갔다.

- 조선일보가 바뀌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조선일보의 반민주적·반민족적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어야지. 사람이 깨야 돼. 자신을 민주구성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신문을 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그 신문을 본다는 것은 그 신문의 반민주적, 반민족적 행위를 용인한다는 거야. 그러니 그 신문을 안 봐야 해. 조선일보가 힘이 많은 것은 발행부수가 많기 때문이니까 거성의 벽을 하나하나 허물어내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해서 빼내야 한다고. 그게 바로 민주화운동이야.”

그는 최근 한겨레에 입사하면서 “한겨레는 사그라들 수 없는 희망이어야 한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겨레가 과연 희망일까?

- 최근 지면에 전투기광고를 싣고 한겨레 통일문화상에 정주영 씨가 제정되는 등 한겨레의 행보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현재 거대신문이 자본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겨레는 살아남으려고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대중지로서 자신을 표현하려면 일단 살아야 한다고. 그런 고민을 알지 못하는 지식인들은 조금만 이상해도 한겨레를 안 봐요. 그런데 거대신문은 ‘그러려니’ 하고 본다고. 기준이 다른 거야, 이중기준이지. 그러니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황당해요. 자기 목소리 내다가 며칠만에 사라지란 건가? 그런 사람들에게 ‘한겨레신문 없는 한국사회를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겨레도 생존을 위해 엄청난 고민을 한다는 것, 꼭 알아주었음 해요.”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한겨레신문. 한겨레의 주요 구독층인 젊은 세대들을 홍 위원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최근 이십대가 점점 보수화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십대에 사회, 역사, 철학에 대한 공부가 전무하기 때문에 이십대에 처음 이념을 접하게 된다고. 그런데 지금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우경화’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에 (이십대들이) 그런 사회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그것을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갑자기 이십대가 보수화됐다고 떠들어대는 보수언론들은 비판받아야 해.”

“지금 이 상태로 계속 된다면…”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언젠가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겠어? 여기가 지금 사람 사는 덴가? 단 1∼2%의 엘리트를 위해 나머지 99%를 박수부대로 만들며… 광란이지, 광란. 모든 부문에서 총체적 변혁이 필요해.”

광란의 시대, 변혁이 절실한 현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이 시대 이 땅에 요구되는 대학생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긴장해야 해요. 긴장(緊長)은 말 그대로 줄어듬과 늘어남의 균형상태를 뜻하죠. 긴장은 곧 균형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긴장, 자아실현과 생존과의 긴장을 꾸준히 해야 해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병폐가 100% 진보가 아니면 0%로 간다는 거에요. 균형이 없는 거죠. 물적 토대를 전부 기득권이 갖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성향의 사람들이 생존하려면 100% 자아실현은 사실상 힘들어요. 그런데 100% 자아실현을 못할 경우 모두가 진보쪽에 1%도 안 남기고 청산을 해버려. 극단적인 논리를 버리고 미리부터 ‘어떻게 하면 균형을 이룰까’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해요.”

2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나고 카페에서 나왔다. 첫 대면 때와 마찬가지로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그는 다음날 나올 ‘왜냐면’을 위해 한겨레신문사로 돌아갔다.

다음날, ‘왜냐면’에서는 ‘발전노조 파업의 이유’란 제목으로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한 울산화력발전 노조원의 글과 함께 ‘이 글의 반론을 기대한다’는 홍 위원의 주석이 실려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외대학보 800호(3월 11일자)에 실린 특별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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