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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악의 축’으로 묘사한 부시의 발언으로 촉발된 최근의 반미감정은 솔트레이크의 김동성 편파판정 시비로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 경기에서 보여준 미국의 힘의 논리는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보태기로 미국 모 방송국의 제이레노라는 유명한 토크쇼의 진행자가 한국을 문화적 야만국으로 묘사한 것은 불속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이에 한국의 네티즌들이 유관 사이트를 사이버 공격하고 나아가 미국 제품의 불매 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대목(?) 사건을 만난 방송들도 이 번에 전개된 반미사태 상황과 김동성 관련 뉴스를 쉬지 않고 내보내었다. 계속 되는 시민들의 불매운동 상황을, 또한 김동성의 입국부터 시작한 뉴스는 토크 프로의 다큐멘터리식 스타 만들기 구성으로 이어진다.
물론 본인도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사태와 보상을 위한 김동성의 스타만들기에 같이 춤을 추고 있다. 감히 한 선수의 좌절이 그런 스타 만들기로 보상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여기서 우리는 조금은 감정을 추스리고 고민해 볼 것이 몇 가지 있다. 더 이상의 가십성 방송은 지양하고,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입장이다.
단상 하나...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죽음을 맞아야 했던 양민들이 있었다. 나치 유대인 학살 만행 집단 소송에도 참여했던 고스 변호사는 “노근리 사건이 조직적인 명령 계통에 의해 이뤄졌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미 정부가 특사를 임명해 피해자측과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이 노근리 사건외에도 한국 전쟁 당시 충북 단양, 경남 사천 등 모두 39곳에서 미군의 폭격이나 총격 등에 의한 민간인 및 건물 피해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국방부에 접수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에는 100명 이상의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다는 증언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러한 학살 사건들이 국방부의 소극적인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군의 명예와 정당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 국방장관(당시 조성태 국방장관)이 축소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무고한 동족의 죽음앞에 한 나라의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한국 전쟁중의 수많은 민간인들이 누구에게 어떤 연유로 죽었는지 보다 군의 위상과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이 우선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분노했고 아직도 분노한다.
단상 둘...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맥팔랜드는 주검 방부처리에 사용하는 포르말린 폐용액을 한강에 무단 방류한 혐의로 고발돼 지난 해 3월 벌금 500만 원에 약식 기소됐다가 다음달 재판부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됐으나, 미군측의 공소장 송달 거부로 맥팔랜드 씨에 대한 재판이 10개월 가량 열리지 못하자 신문을 위한 구인장을 발부했다. 법무부도 미군 측에 맥팔랜드 씨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으나 미군 측에 의해 거절당했다.
맥팔랜드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둘러싸고 국내 법원과 주한미군측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 신경전의 걸림돌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이다. 이것은 법원이 내국인이 아닌 미국이나 미 군무원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SOFA에 따라 신문을 거쳐 구속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군측의 도움 없이는 맥팔랜드 씨를 강제 구인할 수 없다. 또한 협조 가능성도 낮아 재판의 계속 지연될 전망상태로 남아 있다.
이 문제에 있어 미군측의 납득하기 어려운 입장은 검찰 수사가 6개월 넘게 진행되어 왔고 검찰이 약식기소해 재판권을 행사할 때는 이의제기가 없다가 법원의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되자 재판권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군측의 30일 정직이라는 자체 징계로 한국법원의 재판을 대신한다는 것은 실로 있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후 주한미군은 영안실 부소장이던 맥팔랜드를 소장으로 승진시켰는가 하면, 자체 조사 때 맥팔랜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한국인 군무원을 해고했다고 모 신문사는 전했다.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닌 이상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국가적 자존심을 끝도 없이 쓸어 내리는 이 시점에서 나는 분노했고 아직도 분노한다.
단상 셋...불모의 땅, 미군부대의 환경오염. 인천
인천 문학산 옛 미군주둔지 오염사건이 대표적 폐해이다. 녹색연합은 미군부대 유류저장고가 있던 인천 연수구 문학산 주변 기름냄새가 진동하는 오염현장을 언론에 공개, 고발했다. 43만 평에 이르는 오염현장에 인천시 조사에서도 혈액장애, 백혈병 등을 유발하는 유류성분이 기준치의 34배나 검출되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불모의 땅’이 되었다.
최근 경기도내 미군기지 토양 오염도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규정된 한미간 합동조사조차 미군쪽 거부로 무산되어 토양오염원으로 추정되는 미군기지는 들어갈 엄두도 못냈다. 자국내 국토 오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조차 봉쇄 당하고 만 것이다.
현행 소파협정 합의의사록 제3조 2항을 보면, 미국은 “대한미국의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하고 정책을 확인”하는데 그치는 반면, 한국은 “미국인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해 환경 법령과 기준을 이행”하도록 돼 있다. 자국내에서 타국의 군사를 위해 법령과 기준을 이행하라는 식민지에서나 가능한 일이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동맹국, 상호주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미국에,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협정과 자신들만의 원칙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부대의 환경오염과 관련된 복구비용만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고 수질문제 있어서는 토지복구 비용의 10배가 든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이 고이(?) 물려주는 오염된 환경을 안고 신음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분노했고 아직도 분노한다.
아마 미국이라는 나라와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주한미군 문제일 것이다. 위의 몇 가지 단상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약소국에 행하는 행동방식의 일례일 뿐이다. 다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행해지고 있는 것들과 그 부당함에 대해 싸워보지도 못하고 움츠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간주했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국전쟁 당시부터 남한을 식민지의 하나 쯤으로 여긴 '제국주의의 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설령 미국이 거대한 힘의 논리로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 하지만 비단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위를 보라. 미국이라는 거대제국과 공생하려는, 다시 말해 힘이라는 권력에 빌붙는 정치인, 언론사 그들이 더욱 나를 분노케 하는 것이다.
또한 방송은 어떠한가? 자본주의 시대 팔리는 방송, 시청자에게 많이 보여지기 위한 상업주의에 물들어 퇴색할 만큼 퇴색했다. 우리가 진정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슈화 시켜 만들어 가야할 의제들은 오히려 단발성 보도로 지나쳐 버리고 얼마나 많은 가십성 보도만을 제공하며, 가십성 프로그램을 양산해내고 있는가?
편파판정을 당했다 치자. 왜 우리는 그러한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가? 혹은 지금 우리가 식민지가 아닌 이상 한 나라로서 당하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왜? 라는 고민을 이슈화시키지 못하는가? 그냥 힘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정도가 방송이 보여줄 수 있는 전부인가?
단지 국민적 분노를 이용한 한 사람의 스타만들기로 인간 다큐를 만들어 시청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산적해 있는 식민지적 고충들에 대한 심층보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에 대한 분노를 가지게 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사건의 경중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방송은 사안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가하기는 고사하고 흥미성 구성만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있다. 적어도 방송은 우리가 싸워나가야 할 중요한 부분들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흥미를 어느 정도 유발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안을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머리속에 공론화 시켜내야 할 것인가의 경중을 가려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자국을 위한 일관성에 경의를 표한다. 어떤 정책이던 방송 행태던 간에 말이다. 우리가 미국을 닮아가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방송이 재미를 쫓기보다는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국민들에게 의제설정의 바른 길을 인도하는 지속성을 보여주면 한다.
자꾸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의 결말과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의 결말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과연 어떠한 결말을 택할 것인가? 그 문제의 시작은 지금부터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방송전문웹진 ZIME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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