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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의 나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이웃집 아줌마나 동창들과 마주하게 될 때 자연스레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것들이다. 한 살 아래인 남편에게 물으니 여자 동창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역시 아이들 교육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직장의 남자 동료나 친구들과는 조기 퇴직이라든가 노후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부턴가 화제에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노인복지 공부를 하고 노인복지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아내를 둔 덕에 '노후 준비는 걱정없겠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솔직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노인의 삶의 질이니 노년 준비 교육이니 하고 외치면서도 막상 나의 노후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버트 베닝가는 '아름다운 실버'에서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노년의 시기를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기 위한 몇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성공적인 은퇴를 하기 위한 준비부터 시작해서 노년의 재정 계획 세우기, 건강한 노년의 삶을 위한 전략, 윤택한 여가를 만드는 법, 사랑과 재혼을 포함한 노년기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노년을 잘 보내기 위한 안내서와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정리해서 담은 책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런 책들 중 하나겠지 생각하고 펼친 이 책에서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퇴직해야 하는가?' '은퇴 후의 재정 지출' '자아관' '당신의 건강은?' 등 책 중간 중간에 들어 있는 자기 점검표에 직접 표시를 해가며 나의 지금 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장의 '새로운 관계들 속으로'에서는 결혼 11년의 적당히 편안하고 적당히 지루한 부부 관계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노년기의 삶의 질에 부부 관계를 비롯한 인간 관계가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점검표에 표시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예를 읽으며 남편과 내가 적인지, 이방인인지, 친구인지, 연인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비밀이지만 말이다.
중국에서 불어닥친 황사로 인해 이틀 동안이나 아이들 학교가 문을 닫을 줄 짐작조차 못했던 것처럼, 사람은 한치 앞의 일도 알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생에 너무도 명확한 것이 두 가지 있으니 바로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순간 소리 소문도 없이 닥치는 일이기에 더 더욱 지금 여기에서 바로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준비는 돈만으로도, 건강만으로도, 머리 속의 지식만으로도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 전체가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다.
젊음과 속도를 쫓아 달려가는 시대를 살면서 우리에게 늙음은 늘 남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준비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 역시 아직 은퇴 시기도, 재정 계획도 불분명하고, 마음 놓을 만큼의 노후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지만, 나와 남편 역시 늙어갈 것이라는 명확한 사실만은 알고 있다. 그리고 단순, 간결, 소박하게 살자는 다짐과 함께 더 나은 관계를 위해 노력할 계획만은 제대로 세워놓았다.
물론 앞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노년 준비에 마음을 써야겠지만 그래도 남편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노인복지 하길 정말 잘 했어. 안 그랬으면 정말 눈 앞의 일에 빠져 정신 없이 허우적댔을 거야. 그리고 아마 이런 책도 안 읽었겠지…'라고. 늙음을 안다는 것은 내 앞에 놓여진 남은 인생의 방향을 알려 주는 신호등을 만난 것과 같다.
(아름다운 실버 Your Renaissance Years / 로버트 L. 베닝가 지음, 조민숙 편역, 열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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