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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넋을 빼는 4월이다. 4월이면 군산에서 전주까지 쭉 뻗은 1백 리 '번영로'에도 벚꽃은 정신 못 차리게 피어날 것이고, 때아닌 눈사태를 보며 나는 또 숨막혀 할 것이다. "왜 하필이면 '벚꽃'이냐? 왜 하필 '이 길'에 벚꽃이란 말이냐?"
전군가도(全群街道), 전주와 군산을 잇는 이 도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작로였다. 1908년 일본인들이 대한제국 정부를 설득해 만든 이 아스팔트 도로는 '수탈의 길'이었다. 군산항으로 들어오는 일제의 군수품은 이 길을 통해 보급되었고, 저 드넓은 김제 만경 들판의 쌀은 이 길을 거쳐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1933년 전국 쌀 생산량이 1630만 석이었는데, 1934년 한 해에 일제는 무려 870만 석을 수탈해갔다. 한 해 동안 이 땅에서 거둬들인 쌀의 절반 이상을 저들이 수탈해간 것이다. 그 가운데 이 전군가도를 이용해 무려 228만 석을 수탈해갔다(1934년은 일제가 군산항을 통해 가장 많은 양의 쌀을 수탈해간 해이다).
수탈 당한 쌀의 1/4을 넘는 수치다. 이 길이 그런 길이다. 그만큼 이 곳이 기름진 곡창지대였다는 말이겠고, 그만큼 이 곳에 살던 조선인들이 배를 주렸다는 말일 게다. 일제가 이 땅을 통치하는 동안 이 신작로는 조선인들이 흘린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길이었다!
전군가도, 왜 하필 '이 길'에 벚꽃이냐
이 도로의 벚나무는 1975년 전북 출신 재일교포의 도움을 받아 심게 되었다. 이 재일교포의 정체를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왜 하필 '재일' 교포가 '벚나무'를 기증했을까. 이 수탈의 길에 일본 국화를 심은 정신머리 없는 '관(官)'을 생각하면 몸이 다 오싹해진다.
지금 이 길에는 눈물도 없고 굶주림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40킬로미터가 넘게 펼쳐진 이 도로 양쪽에는 벚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겁도 없이 서 있고, 길 따라 '망가진' 정신만이 벚꽃처럼 흩날릴 뿐이다. 4월만 되면 벚꽃 잔치로 망가지는 길 위에서 죄다 길을 잃고 만다. 사람 물결, 차 물결로 해마다 4월이면 이 길은 난장판으로 변한다. 포장 두른 술집들이 벚나무만큼이나 즐비하게 늘어서고,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꽃에 취한 뒤 기어이 몸까지 취하고야 만다.
벚꽃 앞에서는 왜 이리 넋이 빠져야 하는가. 벚꽃을 그냥 지게 내버려둘 수 없어서 군산에서는 '벚꽃 아가씨'까지 선발한다. 올해 11번째 벚꽃 아가씨가 탄생할 것이다. 이 '탁류'의 땅에서 사쿠라 아가씨가 되겠다고 몸단장을 하는 조선의 딸들을 생각해 보시라.
2000년부터는 '벚꽃 마라톤 대회'라는 것도 한다. 이 벚꽃 길은 신기하게도 얼추 마라톤 경주 거리와 같다. 올해도 여지없이 눈물도 없고 허기도 모르는 '손기정'들과 '남승룡'들이 이 길을 "생각 없이" '힘차게' 달릴 것이다. '넋'빠진 길을.
번영로 가로수로 부적합한 벚나무
1975년 전주와 군산을 잇는 번영로(전군가도)에 6300여 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3800여 그루만 남아 있다. 교통 사고와 자동차 배출 가스 때문에 많은 수의 벚나무가 뽑혀나가게 된 것이다(벚나무의 수명은 50년 정도인데 이 도로의 벚나무는 차 매연 때문에 10년 정도 그 수명이 줄어들 것이라 한다).
전군가도는 전주, 군산, 익산을 잇는 핵심 도로이자 이들 세 도시 공단에서 생산하는 산업 생산품을 수송하는 산업 도로 구실을 하고 있다. 도로 주변에는 논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드넓은 논바닥 사이로 아스팔트 길이 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람하게 자란 이 벚나무들은 햇빛을 차단하여 도로 주변의 농작물에 해를 입힌다. 이 도로에는 단일 수종만이 심어져 있어 병충해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농약을 자주 주게 되고 주변 농경지와 농수로는 심각하게 오염이 되었다.
촘촘하게 심어진 벚나무는 운전자의 전방 시야를 좁게 만든다. 겨울에는 도로의 얼음이 벚나무 그늘 때문에 잘 녹지 않게 되고 이는 교통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벚나무들이 자라면서 그 뿌리들이 아스팔트로 파고들어 노면이 들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를 바로 보수하지 않으면 물이 고이게 되고 이 또한 교통 사고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가로수에 받혀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이 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교통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로 유명한 도로 가운데 하나이다.
일 년 중 보름 정도 피는 벚꽃을 구경하자고, 엄청난 관리 예산과 행정력을 낭비하고 교통 사고 위험까지 덮어두면서 또 정신까지 팔아가면서 전군가도에 벚나무를 계속 심어두어야 할까. 지역 신문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전라북도 관계자는 "예산을 확보해 수령이 오래 되거나 생채기가 심해 보기 흉한 나무는 모두 대체하고 만경강변에 벚나무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전주와 군산을 잇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조만간 개통되는데 이 길을 두고 "벚꽃길의 명성을 되살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니 또 다른 죽음의 길을 예비하는 것같아 아찔해진다.
진해 군항제의 경우
이런 새똥빠진 벚꽃 잔치가 또 있다. 1952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구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우고 장군의 얼을 추모하는 제사를 올리면서 시작됐다는 진해의 군항제가 그것이다. 진해는 일제가 동북 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항으로 개발한 도시다. 세계적인 벚꽃 도시로 가꾸어보라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분부'가 만들어낸 벚꽃 흩날리는 도시 진해에서 충무공의 얼이 붙어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는 넋이 나가버린 사람들이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고 외쳤다는 사무라이 다카키 마사오를 떠올리며 진해 벚꽃 잔치를 바라보면 진한 감동을 전해주지 않을까.
왕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말 한마디 덕에 전군가도와 진해의 벚꽃 잔치는 떳떳해졌다. 이 정신나간 꽃 잔치를 내심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도 제주도 원산지설에 부담감과 어색함을 훌훌 날려버렸다. 왕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로 밝혀지면서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4월, 저 수탈의 길에 흩날리는 벚꽃에서 정복자들의 음흉한 웃음을 읽으며 나는 또 우리 아이들과 '무궁화'를 노래한다.
하필이면 벚꽃이냐, 왜 하필이면 벚꽃이냐, 아름다운 내 나라의 꽃 무궁화는 어찌하라고∼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제300호)에 쓴 글입니다. 그 글에 할 말을 더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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