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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아홉 수 넘기는 것이 그리 어려운 거라고 했고, 누구는 또 삼재(三災)가 들어서 그런 거라 했다. 1년 간격을 두고 오른손은 건초염, 왼손은 인대 파열로 번갈아 깁스를 하며 나의 서른 아홉과 마흔은 자리 바꿈을 했다.
거기다가 마음은 수시로 불어대는 바람에 휘둘려 어느 한 곳에 내려앉지 못하고 허둥대기만 했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이면 운전석에 앉은 남편에게 "어딘가로 그냥 가고 싶어"하며 애를 끓였고, 남편은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아무 말없이 자유로로 인천 월미도로 내달렸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의 뒷좌석에는 두 아이가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져 있고, 차에서 내리는 남편의 어깨는 피곤으로 축 처져 있었다. 속상했다. 미안해서 그리고 나를 어쩌지 못해서.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는 하소연에 한 친구는 아내의 말 한마디에 차를 돌리는 그런 남편과 살아서 좋겠다고 했고, 그 친구의 남편은 내 남편에게 아직도 가슴속이 펄펄 끓는 아내랑 살아서 좋겠다며 농담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 정말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 몸의 신호. 내게 끊임없이 무언가 말을 걸어오는 몸의 신호를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러니 당연히 변해가는 나의 몸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아프다는 몸의 하소연에 무심했던 것이 결국 과중한 일에 짓눌리는 결과를 낳았고, 기를 쓰고 지탱하던 직장 생활에 몸과 마음 모두 두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몸의 작은 신호와 변화를 제 때에 알아채지 못한 결과가 생활 전체를 바꿔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여성의 몸 여성의 나이>는 여성들이 나이에 따라 다르게 체험하는 몸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십대와 이십대의 이야기는 '몸과 쾌락'으로, 삼사십대의 이야기는 '몸과 일'로, 오륙십대의 이야기는 '나를 받아들이기'라는 제목으로 묶여 있다. 몸으로 겪어나가는 나이듦과 늙어감이 연령대별로 손에 잡힐 듯 세세하게 펼쳐진다.
젊음에 높은 가치를 두는 세상이지만 남성들의 나이듦에는 권위와 힘과 경험의 미덕을 부여한다. 그러나 나이든 여성은 이미 성적인 아름다움을 잃었기에 여성이 아닌 모성에 무게를 두게 되며, 노년기 여성은 아예 성적인 것으로부터 떠난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길 뿐이다.
여성은 어려서는 깨질세라 보호 받는 딸로, 결혼 후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와 아줌마로, 더 나이 들어서는 할머니로 살아갈 뿐이다. 책에서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욕구와 일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하며, 이제 여성들이 나이에 따른 몸의 변화를 직시할 것을, 그리고 서로 다른 경험들을 나눌 것을 권하고 있다.
몸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서 표현하며 서로 나누는 일은 여성이 주체적인 인간으로 사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을 많은 여성들이 모르고 살아 왔고 살고 있다. 나 역시 이제 길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설임없이 '아줌마'로 부르는 나이와 몸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 나의 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몸을 통해서 나 자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43세. 평균 수명에 맞춰 보면 살아온 시간보다 남은 날이 조금 적은 때에 이르렀다. 시간의 분량은 적을지 모르지만 몸은 점점 나이들어 늙어갈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리라. 확실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던 젊은 날, 아무도 너그럽게 봐주지 않는 노년기, 모두 지금의 내 나이와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 내 몸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
몸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일이야말로 노년기의 연장으로 인해 딸로, 엄마로, 아줌마로 사는 시간보다 할머니로 살아갈 시간이 많은 우리들이 자유롭게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나가며 밝고 풍요로운 노년을 보내기 위한 첫걸음이다.
(여성의 몸 여성의 나이 / 또 하나의 문화 제16호,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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