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성의 눈으로 본 신화 일색

그리스 신화가 상당 부분 남성주의에 의해 왜곡, 훼손되었다면? 또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신화 역시 신화의 원형에서 훼손된 채 그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면?

신화연구가 김정숙(41.현 제주 세화고 교사) 씨가 펴낸 '자청비·가믄장아기·백주또-제주섬, 신화 그리고 여성'은 한마디로 '여성의 눈으로 읽는 제주신화 세계'다.

특히 철저히 소외당해 온 '제주(변방)'지역과 '신화' 속의 '여성'에 주목한 저자는 남성의 역사와 관습, 그리고 철저한 남근의 시각에서 해석되고 읽혀지는 신화에 대해 '여성의 눈으로 다시 해석'할 것을 주문한다. 우리 신화에 대한 남성 지배, 여성 순종에 대한 위반과 전복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신들의 고향, 제주 그리고 여성

1만8000명의 신(神)들이 있다는 '신들의 고향' 제주.
신화 속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들은 신화적 상상력과 함께 제주인의 문화 형성력을 만들어 왔다. 이 책은 '제주의 무속신화(=본풀이)에 나타난 수 많은 여성신 가운데 대지의 여신 '자청비' , 전도된 가치에 저항한 '가믄장 아기', 생활력 강하고 이타적인 제주여성의 원형 '백주또'를 비롯 성모마리아 혹은 현모양처로서 살아간 '원강암이' '강림의 큰부인' '노일저대 구일의 딸' 등 6개 여신에 대해 '신화 이야기-원형 해설-현실속의 여신상' 3개 관점에서 분석했다.

가령 '대지의 신' 자청비는 평등과 해방을 갈구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넘어 남성을 지배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사랑과 섹스에 대해, 남성들의 성기중심적 행위처럼 똑같은 폭력(?)을 가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거부하며 때론 현명하고 지혜롭게, 자기주도적이고 기획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으로 해석된다. 한 마디로 '자청비 여성'은 합리성과 사랑이라는 모순된 두 개념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여성인 것이다.

가믄장아기는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 실용적인 태도,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강한 희구를 드러낸다. 백주또는 생활력이 강하고 이타적이라는 제주여성의 원형을 품고 있다.

반면 원강암이, 강림의 큰부인, 노일저대 구일의 딸은 공동체 의식의 요구에만 매몰되어 살았던 여신들로, 조강지처나 혹은 현모양처로서 자신의 개체성을 반납하고 기존 사회의 논리에 맞추어 살아가거나 본능에 충실한 채 사리사욕에만 밝은 모습을 보이는 현재 우리 주위에 일상적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 신화가 최고?

지금까지 많은 신화 연구들이 '제주무속신화(=본풀이)'에 나타난 고어를 표준어(현대어)로 옮기고 구전된 얘기를 글로 풀어쓰는 작업이었다면 이 책은 현 위치에서 신화를 재해석하고 새롭게 창작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신화에 대한 '개론서' 마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우리 신화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에만 치중하는 풍토 속에서 분명 빛을 발한다.

저자는 "도내 350여 개의 (신)당(한개의 신위(神位)에서 많게는 10개 이상의 신위까지)에 모셔있는 신들 가운데 여신이 80%를 차지할 정도"라며 "우리는 아름답고 넉넉한 문화를 가졌지만 스스로 너무 소홀하고 무시해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신화 원형 찾기'는 잠자는 제주의 신화를 현실 속에서 깨어나게 만든 첫 작업이라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저자는 또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여성)신화를 재해석하는 노력이 절실하다"며 "따라서 남성신들에 대한 연구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지속적인 신화작업을 주문했다.

자기욕망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노일저대구일의 딸', 무조건 조용히 참아주는 현모양처로서의 '원강암이'와 '강림의 큰 부인', 전형적 제주어머니인 '백주또', 저항적 기질의 '가믄장 아기', 인습을 거부하며 창의성과 낭만을 소유한 '자청비'.

제주 여신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보다 대중적인 접근을 통해 이들을 현실속에서 다시 살려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 책을 덮을 때 쯤 당신은 되묻게 된다.
'나는 과연 수많은 여성신 가운데 어디쯤 해당할까'.

덧붙이는 글 | 도서출판 각. 1만 원.


자청비.가믄장아기.백주또 - 제주섬, 신화 그리고 여성

김정숙 지음, 각(200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