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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추워서 힘들었지? 힘든 사람, 그리고 정말 바쁜 일 있는 사람은 빠져도 좋아. 나는 모든 연행자가 풀려날 때까지 이 미대사관 농성을 계속할 거야."

전북 익산에서 올라와 싸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서울 한복판 미대사관 옆 거리에서 하룻밤을 스치로폼과 이불로 견디고 난 65세의 노신부, 문정현 신부가 굳은 표정으로 선언한 말이다.

문 신부의 이 말에 따라 함께 노숙했던 15명 가운데, 7명은 국방부 앞 F-X 사업 규탄 시위를 위해 떠났고, 나머지는 해장국을 배달해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틀째 농성에 들어갔다.

한때는 교통 경찰이 다가와 싱가포르 대통령 일행이 지나간다며, 차를 빼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전투 경찰이 10명 정도 방패를 들고 농성단 뒤편에 진을 치는 바람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마찰은 없다.

일반 노숙자 한 분이 철야농성단을 발견하고는 기가 막히다는 듯, "허!"하고는 고개를 흔들며 지나가기도 했고,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한 근처의 직장으로 출근을 하던 많은 공무원들과 직장인들이 처음 보는 광경에 낯설어하며, 현수막과 피켓 내용을 유심히 읽어보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 내용은 주로, "F-15K 구매강요 미국 규탄!" "미군기지 신설확장 연합토지관리계획 규탄!" 같은 것들이다.

한편 경찰은 연행한 15명을 종로경찰서와 은평경찰서로 각각 8명과 7명씩 나누어 수용한 뒤 조사를 벌였다.

현재 종로경찰서에는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김종일 사무처장과 불평등한소파개정국민행동 김판태 사무처장, 유홍 정책실장, 장도정 투쟁3부장을 비롯한 8명이, 은평경찰서에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임종철 공동대표와 가톨릭서울노동사목 김미숙 대표, 가톨릭 평화지기 이원영 사무국장과 이인순 회원을 비롯한 7명이 연행되어 있다.

지금 농성장에는 문정현 신부와 불평등한소파개정국민행동 오두희 상임집행위원장을 비롯한 8명이 함께 하고 있고, 역사적인 미대사관 옆 철야 농성에 자신도 함께 하고 싶다며, 속속 의사를 밝혀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 스님은 이미 농성단에 합류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저는 우리땅미군기지되찾기공동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이날 사회를 보며 집회를 진행한 사람입니다. 

저는 지난 1월 대우자판 노동조합 조합원이 100명 넘게 참가했던 미대사관 월례 시위 때도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4차 소환장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날 시위에서 경찰은 단순 가담자까지 하나하나 모두 연행하면서, 저는 연행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연행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고, 저도 다른 분들처럼 순순히 연행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스스로 핵심이라고 지목한 저를 연행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 참석자들은 모두 의아해 했는데 알고 보니 종로 경찰서 형사들이 거의 모두 바뀌는 바람에 제가 누구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불평등한소파개정국민행동 김판태 사무처장에 따르면, 경찰서에 도착하자, 경찰들이 제 수사 서류를 내놓고 "김용한인 어딨어?" 하며 찾다가 제가 없자 난감해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저녁 때 종로경찰서로 면회를 갔습니다. 정문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30분 정도 모두 면담하고는 유유히 걸어나왔습니다. 저는 은평경찰서에도 면회를 갔으나 시간이 너무 늦는 바람에 면회는 못하고 돌아와 철야농성에 합류했습니다.

 저는 미대사관 집회가 분명히 합법이고 평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찰들은 미대사관에서 85미터밖에 안 떨어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15미터 뒤로 물러나면 100미터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공원 전체가 한 필지이기 때문에 공원 어디에서 해도 85미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초등학생도 웃을 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떤 불법이나 폭력을 저지른 적이 없이 때문에 결코 경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미대사관 앞에서 철야농성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000년 소파 개정 촉구 시위 때도 시도는 했지만, 실제로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농성장소를 명동성당으로 옮긴 적이 있습니다. 2002년 4월 16일, 17일.... 앞으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적인 시위대를 연행한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기 때문에 연행된 시위대 모두가 풀려날 때까지 이 거룩한 농성을 계속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시길 빕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 국민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당당히 우리의 권리를 주장합시다. 그것만이 나라를 세우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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