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상품시장에서 히트를 친 상품 뒤에는 Me Too 상품이 있다. 영어로 '나도 역시'라는 의미의 Me Too 상품은 경쟁사의 인기제품을 베껴 인기에 편승하는 전략이다. 남이 애써 만들어 놓은 제품을 무분별하게 베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상품 시장에서 Me Too 상품은 이미 마케팅의 전략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실제 상품시장에서는 Me Too 상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리지널 상품에 Me Too 상품이 뒤를 이으면서 시장 자체가 커지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Me Too 상품이 나오면서 오히려 오리지널 상품의 인기가 오르는 경우도 많아 제품력에 자신 있는 업체는 Me Too 상품을 오히려 반기기도 한다.

TV에서 이러한 Me Too 상품의 양상이 잘 드러나는 것이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TV 드라마에서 유행했던 포맷의 모방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상품시장과 달리 창조성이라는 예술의 범주에 속해 있어서인가? Me Too 상품의 긍정성보다는 여러 가지 문제점과 작가의 저작권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드라마 베끼기에 있어서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최근 MBC 주말 드라마 "여우와 솜사탕"이 방송작가 김수현 씨의 "사랑이 뭐길래"의 저작권을 침해했음을 인정함에 따라 방송가의 "베끼기"에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의 베끼기와 여우와 솜사탕 공방전

사실 방송가의 베끼기는 방송계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드라마는 물론 여러 오락프로와 교양 프로그램의 포맷이 일본과 기타 외국의 방송 프로와 동일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 표절 사건은 처음으로 법원에서 인정됐다는 점에서 방송가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경우를 보면 지난 98년 KBS 2 TV "일요베스트-결혼 2주전"은 영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을 표절한 혐의로 방송위원회에서 "경고 및 연출자 경고"를 받았고, 95년 MBC 드라마 "거미"는 외화 "아라크네의 비밀"을 베꼈다는 논란에서 "경고" 조치됐었다.

99년 MBC 드라마 "청춘"은 일본 후지TV "러브 제네레이션"을 표절한 게 들통나 10회만에 조기 종영됐다. 그리고 우리나라 만화영화를 토대로 제작한 SBS의 "미스터 큐"와 그 이후에 베낀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상당히 유사한 포맷으로 "토마토" 등의 후속편을 제작했던 SBS 드라마는 시청자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드라마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 방송가에서 드라마가 표절을 해서라도 인기를 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마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번 사건에서 김수현 씨가 "여우와 솜산탕"의 방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한 데 대해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은 3월 28일 기각결정을 하면서도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인정을 했다. 법원은 "드라마를 표절했다는 것은 인정되지만 방송이 금지될 경우 방송사에 거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면서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던 것이다.

오만한 방송국 그리고 시청자

모방이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듯이 한 작품에 있어서의 표절의 시비는 애매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호한 헛점을 이용해 치열한 고민 없이 쓰여진 작품이 표절한 작품이라는 의구심에서 벗어나기란 또한 쉽지 않다. 이 시점에서 방송국은 많은 부분 유사한 대사와 인물 설정 등으로 이미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 판결이 난 상황에서 어떠한 사과 혹은 명명백백한 해명이 있어야 할텐데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반박하고 나선다.

MBC 측은 김수현 씨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자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기각한 것이라면서 일부의 유사점을 가지고 표절을 문제삼는 것은 저작권 보호의 본 취지를 부당하게 남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작가와 계약할 때 표절로 드러날 경우 계약 무효화 혹은 손해배상을 물도록 하고 있는 MBC의 규정은 모든 문제를 작가 개인 책임으로 미루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방송국의 책임회피와 어이없는 자신감으로 언죽번죽 떠들어대는 것이 어디 한 방송사의 문제이겠는가?

여기서 방송사들의 고질적인 안하무인의 태도는 각성을 필요로 한다. 이미 방송국이 거대 공룡이 되어서인가? 그렇다면 미래의 평가에 어떠한 화석으로 평가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드라마 공방전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부분이 시청자들의 대외전이라고 하겠다. 이미 시청자(네티즌)들의 드라마에 대한 영향력은 결말의 내용을 수정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영향력이 진정 능동적 수용자로서 방송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시청자들은 "여우와 솜사탕" 과 "내 사랑 누굴까"의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 항의글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게시판의 대다수의 글들은 서로의 정확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각 애청 드라마에 대한 옹호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언쟁이 오고갈 뿐이었다.

"여우와 솜사탕"의 한 애청자는 이 프로가 방송 금지를 당하더라도 절대 "내 사랑 누굴까"를 보지 말자고 주장했다. 또 김수현 씨가 자신의 드라마가 시청률이 못 미치자 난리를 치는 것이라고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쓴 보기 민망한 글들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김수현 씨의 옹호에 선 애청자는 "여우와 솜사탕" 시청자들의 글을 보면서 명백한 표절의 근거를 모른다고 잡아떼는 점이 한심하다는 식의 감정적인 분풀이로 서로에게 미움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시청자의 힘을 실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소모적으로 부르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히려 앞으로의 방송 프로그램에 있어서 그 공익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시청자들부터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있어서 시청자들의 질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비판과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의 이중잣대 속에서 스스로 객관성을 잃는다면 방송 프로의 무책임한 질주는 누가 제동을 걸 수 있을까.

방송국의 표절만을 손가락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것도 뒤늦은 힐책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방송 프로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시청자도 감시자로서 역할을 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