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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탈당을 선언했다. 김 대통령은 민주당 전신인 국민회의를 1995년에 창당하여 97년 대선에 출마했고, 집권 후에는 민주당 총재로서의 절대적 권한을 행사해왔다. 적어도 총재직 사퇴 이전까지 민주당은 누가 뭐래도 'DJ당'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DJ없는 민주당'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하기에 탈당을 결심한 김 대통령에게나, 이를 받아들이는 민주당에게나 오늘은 만감이 교차하는 날이 될 것이다.

현시점에서 김 대통령의 탈당은 민주당에 더 이상 부담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통령 세 아들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불거진 이후 청와대는 의혹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여당인 민주당으로서도 지지율의 동반하락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민경선의 효과로 잠시 반등했던 당 지지율은 다시 하락 기미를 보였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율에까지 영향을 주는 조짐이 발견되었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이 6일 오전 9시 30분 김대중대통령 탈당을 발표하고 있다. ⓒ KBS

경선 과정에서는 김 대통령과 노무현 후보가 분리된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야당은 노 후보가 김 대통령의 계승자임을 집중공격하며 노풍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 노 후보는 이제 민주당의 후보로, 민주당과 함께 선거를 치러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특히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현정권의 부패비리 의혹 문제가 최대의 쟁점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김 대통령의 문제가 노무현 후보에게도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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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미 민주당 내에서는 탈당 불가피론이 조심스럽게 거론되어 왔다. 차마 누가 나서서 그같은 요구를 하지는 못하지만, 김 대통령의 결단을 바라는 분위기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만들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같은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김 대통령으로서는 밀려나서 하게 되는 탈당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탈당을 선택한 셈이다.

김 대통령의 탈당은 민주당 내 세력질서 변화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동교동계의 몰락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김 대통령의 탈당이 이루어짐으로써, 민주당 내부의 세력교체 흐름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민주당 내에서 동교동계 내지는 김 대통령 직계가 갖는 집단적 영향력은 사실상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후보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 대통령의 탈당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 구축을 위한 환경의 조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야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 대통령의 조기탈당은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현정권의 부패비리 의혹을 집중공격하며 노풍을 잠재운다는 것을 최대의 전략으로 설정한 상태였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후보는 동일체라는 것이 기본 공격방향이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탈당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이같은 과녁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김 대통령과 노무현 후보를 하나로 묶어 공격하려는 구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김 대통령의 탈당을 '국면전환용 위장탈당'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그같은 이유에서이다. 김 대통령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정권의 계승자"라는 한나라당의 공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통령은 탈당선언과 함께 자신의 아들문제에 대한 대국민사과를 했다. 이 역시 검찰수사의 짐을 덜어주려는 의사로 풀이된다. 아들문제에 대해서는 검찰수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사법처리까지도 각오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로써 홍업-홍걸 씨에 대한 검찰수사는 급류를 탈 전망이다. 이미 검찰은 두 사람을 이번 주 안에 소환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이 한꺼번에 사법 처리되는 초유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현철 씨 파문을 능가하는 사회적·정치적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그 충격파가 아무리 크더라도 모든 의혹의 진상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하는 것은 이제 검찰이 짊어진 책임이다.

김 대통령의 탈당은 한 시대의 마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한 시대의 마감이 집권세력이나 국민들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며 이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5년 전 야당총재의 위치에서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 문제를 공격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이제 자신의 아들문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그 결과 김영삼 전대통령보다도 더 일찍 탈당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무리 멋있는 말로 포장한다 해도 그 바탕에는 우리 정치의 불행, 나라의 불행이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넋두리를 하게 된다. "김대중 시대도 결국 이렇게 끝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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