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손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 다치지 않고 건강한 손, 흉터없이 깨끗한 손, 잘 움직이는 손. 보통 사람들의 손.
몇 달 전 우연한 사고로 손을 다친 후 생긴 버릇이다. 맥도날드에 햄버거를 먹으러 가도 쓰레기통에 새겨진 손그림이 햄버거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도 주인공이 죽는 장면보다 손을 다치는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거린다.
영화 <로얄 테넌바움>을 보면 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친아버지의 도끼시범을 도와주다 사고로 손가락을 잘리게 된다. 그녀는 '의료용 장갑'이라는 것의 손가락만 잘라 다친 손가락에 끼우고 다닌다. 잘 빠지지 않게 반지도 예쁘게 끼고 말이다. '잡스터(Jobster)'라고 불리는 의료용 압박장갑을 필자도 끼고 다닌다. 앞으로 완쾌될 때까지는 주욱 이 장갑과 동고동락을 해야한다. 이제 더운 여름이 다가오니 손의 땀띠 정도는 용감하게 감수해야 한다.
인상파 화가 르느와르는 팔을 다친 적이 있다. 그는 꽤 오랫동안 골절한 팔로 인해 통증을 느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팔을 다친다는 것은 꽤 큰 치명타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병에 걸린 적이 없는 사람은 건강을 누릴 수 없어. 만약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맑은 날을 즐길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인생의 즐거움 가운데 시련은 꼭 필요한 거란다."
르느와르의 이 말 한마디는 그의 그림처럼 잔잔하게, 그리고 화사하게 필자의 마음을 감싸안았다. 손을 다치지 않았다면 손의 소중함도 몰랐을 터였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고 비교의 문제였다. 막상 제대로 작동할 때는 그 중요함을 몰랐다가 고장이 난 다음에는 그 존재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다친 손을 위로하기 위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다빈치 출판사에서 출간된 <줄리 마네의 일기-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이다. 이 책은 큰 감동과 숨겨진 정보보다는 수수하고 담백한 삶의 에센스를 느끼게 해준다.
줄리 마네(Julie Manet, 1878~1966)는 에두아르 마네의 조카이며 인상주의 여류화가인 베르트 모리조의 딸이다. 그녀가 1893년부터 1899년까지 쓴 일기가 이 책의 원서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고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화가 르느와르, 에드가 드가, 클로드 모네 등의 보살핌 속에서 애정과 사랑을 받으며 성숙했다. 말라르메는 줄리의 대부가 되었으며 르느와르는 줄리의 그림과 삶에 애정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줄리 마네의 일기에는 어린 소녀가 내다보는 세상이 있으며, 그녀가 존경하는 화가들의 솔직한 사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르느와르는 "우리는 데카당스 시대에 살고 있어. 모두들 시속 몇 십 킬로미터로 뛰어다니는 일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거든. 그런 일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 자동차란 형편없는 물건이야. 고작 기분전환을 위한 도구일 뿐이야. 노동자와 고용자는 서로 양보할 필요가 있어. 그런데 기계가 전부 해버리니 노동자들은 달리 생각할 수도 없고, 성공의 기회도 없어졌어. 이렇다면 인간에게 진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라며 문명을 비판했다. 또한, 르느와르는 "유대인들은 프랑스에 돈을 벌러 와선 막상 전쟁이 나면 나무 뒤에 숨어버리지"라며 유대인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드가는 제작 중인 작품을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줄리 마네에게는 "지금부터 색채가 난무하는 것을 보여주지. 지금 그리고 있는 중이야"라며 자신의 아틀리에를 공개하곤 했다.
줄리 마네는 세익스피어에 대한 찬사, 드레퓌스파 프랑스 언론 등의 정당하지 않은 모습 등, 그림, 음악레슨, 여행, 콘서트, 전람회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일기장에 담았으며, 그 안에는 예술가들의 가식없는 모습과 삶에 대한 예술적인 성찰이 잘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인상파 화가들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올 칼라로 책과 함께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이 일기장의 가장 화려한 볼거리다.
덧붙이는 글 | *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사조다.
감각적으로 느낀 인상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묘사했으며,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규칙에 구애됨 없이 화가 자신이 개인적으로 느낀 인상에 따라 대상을 재현했다. - 모리스 세쥘라즈(미술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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