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살고 싶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에 끊임없이 무언가 주는 존재인 나무는,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평생을 한 자리에서 그렇게 말없이 살아가는 나무는 늘 놀라웠고 바라보기만 해도 그냥 좋았다. 내 나이보다 훨씬 긴 시간을 그렇게 서있었을 나무들을 보면 그냥 나무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나무님…'이라고 불러보기도 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의사는 위험 임신이라 했고 그래서 가만히 누워있지 않으면 아이를 잃게될 거라 했다. 하루 하루가 불안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집안에 갇힌 채 보내야 했던 시간들. 엄마 뱃속에 든든히 뿌리 내리고 잘 견뎌달라고 아이에게 이름을 붙였다. 뱃속 아기의 이름은 나무였다.
영화 속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몬타나주 시골 교회 목사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강에서 펼쳐지는 플라이 낚시를 통해 엮어가는 영화이다. 낚싯줄 던지는 법을 메트로놈의 박자에 맞춰 가르쳐 주는 아버지, 아버지의 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고지식한 형 노먼, 자기만의 낚시 방법을 찾아내는 자유분방한 동생 폴.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났던 형은 이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대학 교수 발령을 기다리고 있고, 동생은 신문 기자가 되었다. 형의 귀향을 계기로 다시 만나 아름다운 강에서 플라이 낚시로 송어를 잡아 올리는 두 사람. 그러나 술과 도박을 멀리 하지 못한 폴이 뜻밖의 죽음을 맞게 되고, 노먼은 바라던 대학 교수가 되어 시카고로 떠난다.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 두 사람만 남고, 작은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는 돌아가시 전 마지막 설교에서 그 아들에 대한 사랑과 인생에서 얻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온하고 종교적인 집안 분위기를 그대로 따르며 사는 노먼은 평탄한 길을 걸어가지만, 자유로운 폴은 그렇게 살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붙잡는 단 한 가지는 바로 플라이 낚시. 멋진 낚시꾼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물고기의 마음이 되려면 한 3년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답한다. 그러나 가슴 속에 불덩이를 품었기에 그렇게 너무 일찍,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죽음을 향해 달려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플라이 낚시 방식을 그대로 가르쳐주며 아들들이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을 제대로 알기를 바랐던 아버지는 젊은 아들의 죽음을 겪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꺼이 돕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우리는 사실 무엇을 도와야 할지도 모르며 원치 않는 도움을 주곤 한다는 그의 마지막 설교는 그래서 가슴 아프다. 그러나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완벽한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해도 완벽한 사랑은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래도 작은 희망이나마 품게 한다.
이제 나이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다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노먼. 검버섯 피고 주름진 손으로 낚싯대에 미끼를 끼운다. 주위의 모든 풍경과 하나 되어 강물에 넋을 잃곤 한다고 고백하는 노먼은 그렇게 인생의 강을 흘러 노년의 바다에 와있다.
강물을 볼 때마다 강처럼 흘러가고 싶었다. 아프고 힘들었던, 그래서 지우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다 끌어 안고 세월 저편으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고 싶었다. 담담한 물이 되어 노년의 바다에 이르고 싶었다. 보내지 못한 낡은 편지 묶음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내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 20년 쯤 흐르고 나면
나무처럼 욕심없이 서있을 수 있겠지요
강물처럼 다 쓸어 안고 흐를 수 있겠지요
한 20년 쯤 흐르고 나면…"
나도 나무처럼, 강물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A River Runs Through It 흐르는 강물처럼 /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 출연 크레이그 셰퍼, 브래드 피트, 톰 스케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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