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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할머니들은 모두 쪼글쪼글한 주름에 검버섯 핀 얼굴들이다. 기름기 없이 부스스한 흰머리는 싸구려 비녀로 틀어 올리고, 다 닳아 버린 손톱 사이에는 켜켜로 쌓인 때가 가득하다.

고개 숙이고 무얼 들여다 보는 얼굴에도, 고개 돌린 뒷모습에도, 같이 모여서 한 곳을 바라보는 얼굴에도 세월은 그 지독한 흔적을 부끄럼없이 드러내 놓고 있다.

영화 간판 그리기로 그림을 시작했다는 화가의 나이 67세. '향(鄕)' 연작에서는 추수가 끝난 논 움푹 파인 채 남은 트랙터 바퀴 자국에 물이 고이고 또 얼어간다.

우리들 생의 마지막도 그렇게 텅빈 논으로, 깊게 파인 바퀴 자국같은 상처로만 기억될까. 다행히 뭉개진 논바닥에서 초록 싹이 돋아난다. 그런 희망이라도 없으면 이 팍팍한 삶을 어찌 견디나 싶기도 하다.

여섯 작품이 걸린 '동해인' 연작은, 화가가 동해안에서 만난 노인들을 그린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할머니들 모습이다. 그런데 그림 속의 할머니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무 생각이 없는 듯도 하고, 어찌 보면 넋을 놓고 있는 듯도 한 그림 속의 할머니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 가야할 길,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하는 그 길을 이미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주름살 사이 사이에 들어찬 세월이 만들어 놓은 그 길 말이다.

인사동을 빠져 나와 종로2가로 향하는데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걸음을 옮기시는 할아버지들과 계속 마주친다. 모두 한 쪽 방향을 향하고 계셨다. 발길을 돌려 할아버지들 뒤를 따른다.

더위 피할 모자 하나 쓰고, 지팡이 하나 짚고 도착한 그 곳은 탑골공원. 탑골공원에 하루 종일 노인분들 계시는 게 보기 좋지도 않고, 이제 근처에 노인복지센터도 생겼고 하니 탑골공원 출입을 제한하자는 생각에서 써 붙인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입장하시는 분들은 관람을 1시간 이내로 제한해 달라고 한다.

그 1시간이 영 마뜩치않은 할아버지들은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종묘공원. 할아버지들이 거의 베이지색 아니면 옅은 회색의 옷을 입으셔서인지 공원의 초록 이파리들 사이로 무채색의 기운이 이리 저리 흘러 다닌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무엇을 향해 가고 있나. 서울 종로 거리에서 할아버지들은 그저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인데, 화가 이상원의 '동해인' 그림 속 할머니들은 당신들이 보고 있는 것은 슬며시 감춘 채 우리에게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이상원 개인전 /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 ∼ 6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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