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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들과 미사리의 모 카페에 간 적이 있다. 무대에선 이름 모를 통기타 가수가 앉아 노래하고 있었다. 그는 중간중간 싱거운 멘트를 섞어 가며 팝송부터 가요까지 온갖 추억의 히트곡들을 불러주었는데, 그 바닥이 다 그렇듯이 적당히 달콤한 목소리에 적당히 들을만한 수위의 연주가 계속되었다. 즉 음학적으로는 별로이고 음악적으로는 별 무리 없는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한참 분위기가 좋을 무렵 그 가수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젊은 손님들을 위한 노래를 몇 곡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기타 스트로크를 연신 날리며 HOT의 '캔디‘를 부르는 것이었다. 통기타 반주에 얹힌 댄스가요 멜로디와 어설픈 랩이 손님들을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그 뒤로도 아이돌 댄스곡의 ’어쿠스틱 버전‘이 몇 곡 이어졌다.

계속 듣다보니 ’특이하군‘하는 생각, 또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처량한 느낌이 가슴을 적셨다. 그 처량함이 무엇인지 그때는 정체를 몰랐지만, 확실한 것은 그런 식의 패러디를 또다시 찾아다니며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기발한 이벤트‘는 한번으로 족했다.

‘자전거 탄 풍경’은 그룹 ‘세발 자전거’와 ‘풍경’의 전 멤버 셋이 모여 만든 기타 트리오다. ‘자전거 탄 풍경’이란 이름부터가 예전에 속했던 두 그룹의 명칭을 조합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나 풍경과 같은 단어가 만들어내는 ‘Natural’한 정서도 작용함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이들이 근래 내놓은 앨범인 ‘너희가 통기타를 믿느냐’는 필자가 미사리 가수의 기발한 패러디에서 받은 느낌의 정체를 뚜렷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 이유 하나는 이 음반이 아이돌 그룹 히트곡의 ‘리메이크’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포크-기타 뮤지션쉽 Musicianship의 정처 없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선 처음 몇 곡은 청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아니, 흥미 유발 차원을 넘어 원곡이 갖는 ‘저속’함을 일정부분 만회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핑클의 ‘영원한 사랑’을 능청스레 기타 반주로 부르고, god의 ‘어머님께’ 역시 보다 격앙된 감정으로, 랩도 일일이 멜로디로 바꿔서 소화해낸다.

핑클이 부를 땐 별로 영원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이 ‘영원할 것’처럼 보이고, 가족 쇼비니즘의 일종으로 보이던 god의 노래가 ‘진실한 효성’을 드러낸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느낌을 오래 지속시키기는 힘들다.

이어지는 ‘가시나무’가 조성모에 대한 야유임은 눈치 채기 어려움이 없으나, 그것이 원래는 신실한 감성의 전달자인 하덕규의 곡임을 상기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본의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더라도 패러디곡 사이에 끼어있는 관계로 유쾌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다. 가히 국민가요라 할 만했던 ‘DOC와 춤을’이나 ‘오빠’는 이재수가 연상돼서 역시 불편하다.

또 ‘이건 리메이크야’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다그쳐 봐도 기타 아르페지오 위에 얹어진 ‘이젠 나를 가져봐’ 같은 가사나 ‘우리 집 개도 이런 건 안 먹겠다’ 같은 고함소리는 의도적 패러디, 그 중에서도 아이돌 스타들에 대한 야유라는 심증을 굳히게 만든다.

게다가 앨범을 마지막까지 들으려는 동기도 중간쯤 듣다 보면 서서히 희박해진다. 해프닝 내지 이벤트는 처음 접할 때는 재미있지만 자꾸 반복되면 지겹기 마련이듯이. 게다가 기타를 유유히 터치하며 애들의 노래를 부르는 모양새는 본래 의도를 떠나 어딘지 모르게 처량하다. 예전 미사리의 그 경험이 떠올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음반에 ‘히트 곡을 리메이크해 상업적 성공을 노렸다’는 혐의를 씌우는 것은 방송 한번 제대로 타지 않는 세 사람에 대한 모독일 테니까 삼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히트 곡 메이커, 10대 가수들에 대해 돌리는 야유는 어쩐지 ‘음지’로 물러난 어쿠스틱 음악에 대한 변명이나 책임 전가로 보여서 즐겁지 않게 다가온다. ‘니들 때문에 우리가 음지에 있다’라고 힐난하는 것처럼 보여서 씁쓸하다.

한때 포크가 통기타가 청춘들을 이끌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어떤가. 중심에서 뒷전으로 물러난 지 오래고 자라나는 십대들에게는 ‘구리다’는 소리를 듣는 형편이 되었다. 이게 단순히 인기 아이돌 댄스가수들의 책임일까. 아니면 바뀐 시스템에, 마인드 자체가 뒤집힌 청중들에 적응하지 못한 기타맨들의 책임일까. 지금으로선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스템의 급변속에서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이들의 뮤지션십 역시도 동시에 와해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방향을 잃어버리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모독인가? 그래서 필자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자들이 10대 가수들을 ‘야유’하기 이전에, 먼저 좋은 곡을 쓰고 좋은 노래를 부르는 일에 치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음반 제목처럼 우리가 ‘통기타를 믿기’엔 너무 먼 길로 와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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