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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조종석, 자동차의 계기판, 컴퓨터 모니터, 휴대폰 스크린.
이런 것을 일컬어 인포스피어(Info-Sphere)라고 부른다. 정보처리의 대상이 되는 넓이로 측정한 3차원 인지공간의 범위를 나타내는 말인데 원래 미 국방부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첨단 구축함 이지스의 인포스피어는 수백 Km에 이르는 반면에 운전자의 인포스피어는 계기판과 백미러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시야가 한계치다.
인포스피어는 정보처리자의 운동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운전을 하면서 TV를 볼 수 없고 걸어가면서는 음악 밖에 들을 수 없다. 국내의 자동차 회사들이 TV를 옵션으로 내세운 것을 보고 많이 팔면 1천대라고 생각했다. 운전기사 딸린 자가용을 탈 수 있는 사장님에게나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서핑하는 네티즌의 인포스피어는 한반도를 벗어나 지구촌 전체에 이른다. 14인치 모니터를 창으로 삼아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미국이 광대역통신 도입이 늦어져 경기침체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는 한편에 휴대폰 왕국 유럽은 너무 앞서간 차세대 이동통신사업 때문에 대륙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에게는 IMT-2000으로 알려진 이 3세대 통신서비스가 실현되면 ADSL과 버금가는 속도로 동영상을 다운로드 받고 화상통신을 하는 등 꿈같은 미래가 열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만큼 유럽의 실험에 세계가 주목을 하던 참인데 최근 <비즈니스 위크>의 보도에 따르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전혀 진척이 없다고 한다. 유럽이 미국에 맞서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몇 안되는 IT의 자존심이었기에 더욱 충격이 큰 모양이다.
사실 기자는 진작부터 휴대폰에 동영상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 무슨 효용이 있나 생각해 왔었다. 인포스피어라는 개념 때문이다.
휴대폰은 대개 걷거나 운전을 할 때 그 효용이 가장 높아지는 물건인데 문제는 이렇게 이동중일 때는 대개 눈을 전방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행인은 전봇대를 들이받고 자동차는 교통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은 굳이 통계수치를 들이밀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그렇다고 자리에 앉으면 동영상 서비스가 필요한가 하면 그게 또 그렇지 않다. 책상에 앉으면 전국 어느 곳에서건 초고속 통신망에 연결된 PC에서 얼마든지 고화질의 영상을 즐길 수 있는데 누가 비싼 사용료를 물면서 화질도 떨어지는 동영상을 휴대폰으로 다운로드 받으려 하겠는가?
결국 신기한 물건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취미생활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유럽의 3세대 이동통신사업이 죽을 쑤고 있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는 기자의 예상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보행자가 취할 수 있는 인포스피어의 최대치를 감안할 때 이동통신은 현재의 텍스트 위주에서 약간 진보한 56K 모뎀 정도의 속도가 효용의 극한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 이상을 추구한다면 그야 말로 기술맹신주의에 빠진 엔지니어의 패착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SK 텔레콤이 당초 약속한 IMT-2000사업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CDMA2000-1X라는 한단계 아래 서비스로 소리 없이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K 텔레콤도 나름대로 시장을 아는 현명한 직원들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금년 대선처럼 매체간 대립이 극한까지 올라간 경우도 드물 것이다. 길거리 유세도 아니고 유인물 배포도 아니고 대립의 핵심은 신문·방송 구세대 매체와 인터넷·휴대폰 신세대 매체의 일대 격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매체가 다르고 용도가 틀리니 신·구 세대 매체의 인포스피어도 당연히 다르다. 신문의 경우 당초에는 매우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핫 미디어'로 여겨졌으나 제목과 그래픽 위주로 편집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지금에 와서는 '쿨 미디어' 임이 분명하다.
본문에 잔뜩 써 놓긴 했지만 사실 신문의 실력은 제목뽑기 하나에서 결판이 나는 것이다. 차분한 설득에서 선전·선동지로 변모하고 있는 우리나라 신문의 모습이다. 매우 천박하고 경박한 인포스피어다.
반대로 인터넷 매체는 깊이 있고 큰 설득력을 가진 강력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핫 미디어'의 대표주자인 셈이다. 따라서 인포스피어의 범주 또한 거대하다.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이 어느 쪽에서 미래의 비전을 발견해야 할지는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명할 것이다.
사회의 인포스피어가 넓어지고 정보처리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경제활동의 효용성은 극대화된다. 몰라서 바가지 쓰고 바보같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최소화 되기 때문이다. 가격비교 사이트가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 한국경제가 놀라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지방선거에 대선에 매체전략에 한창일 참모들은 잠시 앉아 당신이 가진 인포스피어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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